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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5 조회수1,551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못하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나옵니다. 개신교 성경은 결코라는 말 대신에 예전에 보면 결단코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됩니다. 절대 이런 말이잖습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무서운 느낌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율법과 계명을 잘 준수하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위선에 대해 질타를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일반적으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선을 긋고 아예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지킨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임에도 말입니다. 실제 율법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랑과 애덕을 실천해야 함에도 말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드러나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거룩한 생활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채 더 교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언제 한번 이 복음을 묵상했을 때와 오늘 이 복음을 묵상했을 때 바라보는 관점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땐 제가 처음에 언급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의로워야 그럼 하늘 나라에 간다는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근데 오늘은 좀 다른 생각이 듭니다. 이때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의로워야 한다는 것보다 그들의 보여주기식의 의로움 같은 그런 의로움은 진정한 의로움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그런 의로움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단적인 예가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형제에게 하는 사소한 말에서 오는 상처라든지 형제간에 어떤 불화가 있었다면 그에 대해 서로 화해와 용서를 하지 않는 것 등등 많은 게 있을 겁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제 복음 묵상에서도 이런 내용을 언급했지만 황금률의 법칙에 따라 우리도 남에게 용서를 하면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길 희망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우리의 형제에 대해서는 용서의 문을 잘 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단적으로 바로 이런 게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과 같거나 아니면 더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하늘 나라에 간다는 게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로움에 점수를 매긴다는 것도 힘들겠지만 점수로 표시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나의 점수는 몇 점일까 한번 생각해보면 과연 30점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도 이런 게 갖춰지지 않으면 하늘 나라는 정말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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