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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읽기와 묵상은 어떤 관계인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6 조회수862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흘 전에 원주교구 신부님과 약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마지막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하나 제안을 하셨습니다. 15분 정도 다음 주제로 대화를 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과 읽고 난 후에 묵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어떤 차이가 발생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다른 일을 보셔야 되기에 혹시 이런 내용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서 글을 한번 작성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제가 한번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이런 걸 한다는 것도 어쩌면 교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비록 성경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성경을 접한 사람으로서 이런 부분에 대해 그동안 느꼈던 단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밝힐 수가 있지 않을까 해서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원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원인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왜 타락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게 대화의 주제였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였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성경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때 신부님께서 아주 많이 공감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 한번 이런 이야기를 글로 구성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왜 읽어야 할까요? 성경은 모든 말씀이 다 한 글자 한 글자 글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말입니다. 글자가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됩니다. 글자 하나 하나는 생명이 없는 글입니다. 하지만 그 생명이 없는 단어에 하느님의 영이 스며들게 되면 그 글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인 단어와 문장으로 거듭날 때는 더 이상 죽은 글이 아닙니다. 글 자체는 종이 위에 활자로 고정되어 있지만 그 글이 우리의 눈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전달될 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전해져오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습니다. 남자가 한 여자를 아주 사랑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남자는 왜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하지 않고 단순히 사랑한다고 하면 여자는 단순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지만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근데 남자가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로만 표현을 했을 때와 왜 사랑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뭔가 자기의 느낌을 말로 하면 그 말을 듣는 여자는 그냥 단순히 사랑한다고 표현을 했을 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자기가 얼마나 사랑을 받는지 그 느낌을 이해할 수가 있고 또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야 사랑의 감정이 서로 싹틀 수가 있을 겁니다. 일방적인 사랑은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 공감하고 교감해야 됩니다.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 여자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야 어떻게 여자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야 상대를 배려할 수가 있고 그런 과정에서 사랑이 무럭무럭 자랄 수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단순히 그냥 자비롭고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남자가 미인인 여자의 외모만 보고 그냥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수단으로써 우린 성경을 공부하고 또 늘 말씀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을 할 겁니다. 무더운 여름에 연인과 드라이브를 하는데 사랑하는 여자가 아주 덥다고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덥다고 공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에어컨을 켜라고 하는 간접적인 뜻인데 그냥 덥지 하고 말만 한다면 여자는 속이 답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냥 성경을 글자 그 액면 그대로 읽게 되면 사랑하는 여자가 덥다고 말하면 덥다는 사실만 알게 되고 그것만 공감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덥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에어컨을 켜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만약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와 같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냥 귓등으로 흘려들으면 되지 않을 겁니다. 여자가 하는 말 하나하나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난 후에 하는 묵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고 그냥 소화가 되지 않은 채 그대로 설사를 해 몸 밖으로 영양분이 몸에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는 모양과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몸뿐만 아니라 사람이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상대의 마음이 어디가 가려운지 그것도 상대가 말을 안 해도 알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상대방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을 겁니다. 그러면 혹자는 그럴 겁니다. 가려운 데를 말하지 않는데 어찌 알 수가 있느냐고 말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이 말도 맞는 말이지만 좀 더 달리 생각하면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많다면 상대에 대해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동안 상대방이 한 말을 통해서 그 상대방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짐짓 짐작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성경에서도 이게 적용될 겁니다. 여러 부분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부분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지금 어떤 부분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섭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죄인에게 한없는 자비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에는 위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하느님의 자비에 회개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희망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다 지쳐서 그만 쓰러질 것입니다.

 

미사 참여만으로는 성화가 되지 않을 겁니다. 미사의 은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반쪽짜리 은혜가 될 수가 있을 겁니다. 미사의 은혜를 충만히 누릴 수 있기 위해서라도 그 밑바탕에 말씀이 자리잡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도 있고 또 한없는 자비로운 말씀도 있지만 이건 당근과 채찍일 겁니다. 당근과 채찍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이 균형잡힌 성장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히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신부님과 통화에서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타락과 관련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타락을 하는 순간에 성경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양심을 찌르게 되기 때문에 다시 그 찔림으로 우리의 모습이 이탈된 궤도에서 다시 정상 궤도를 향해 나아갈 수가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최고의 보루는 말씀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말씀이 가장 탁월한 강론입니다. 하느님 말씀만이 자신의 영혼을 살리는 최고의 명약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족한 견해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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