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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먼저 화해하여라 (마태5,20ㄴ-2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6 조회수77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2월 26일 금요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먼저 화해하여라 (마태5,20-26)

 

1독서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에제18,21-2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1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22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23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주 하느님의 말이다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4 그러나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살 수 있겠느냐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이스라엘 집안아들어 보아라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화답송 시편 130(129),1-2.3-4.5와 6ㄴㄷ-7.7ㄴㄷ-8(◎ 3)

◎ 주님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주님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 깊은 구렁 속에서주님당신께 부르짖나이다주님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애원하는 제 소리에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주님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주님감당할 자 누구이리까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나 주님께 바라네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풍요로운 구원이 있네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복음<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마태5,20-2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 18,21-28)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1-23)

 

에제키엘 18장 21절에서 32절까지는 일시적 선악을 불문하고, 궁극적 선악에 따라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함으로써, 회개를 촉구한다. 즉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는 방도로서회개를 통한 구원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첫번째 단락인 21-24절은, 사람의 과거가 현재나 미래를 지배할 수 없으며사람은 언제든지 새로운 운명으로 진보하거나 퇴보할 수 있는 잠재성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의인은 더욱 의롭게 살고, 악인은 악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에 대한 기대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죄를 저지른 악인이라 할지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주님 대전에 의를 행할 경우, 심판을 모면하고 생명을 얻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의로운 길에서 벗어나 악한 삶에 빠져들 경우, 과거에 행한 의로운 일은 주님 대전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기할 수 있는 공로가 전혀되지 못한다.

자신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는 주님 대전에 판단을 받는 당시의 영적 상태이며, 이는 인간 자신이 과거에 행한 죄악의 족쇄를 풀 능력이 있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이와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으며, 누구에게든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다. 그만큼 주님께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면서 회개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돌아서서' 해당하는 '아슈브'(yashub)는 원래 가던 방향으로부터 완전히 돌이켜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슈브'(shub)의 미완료형으로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가정적 진술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가 어떤 것인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곧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과거에 자기 죄악된 본성을 쫓아 행하던 그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향하여 걸어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 대전에 죄를 회개하고 돌아와 말씀대로 살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 이며,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고 하니, 그 얼마나 기쁜 소식이며 복된 소식인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실천한 정의'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과거에 저지른 죄악을 조금도 묻지 않으시고, 오직 지금 현재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만약 과거의 죄악을 따진다면, 현재 아무리 정의를 행한다 할지라도,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과거에 죄악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서 정의를 행한다면,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과거의 죄악으로부터 돌이켜서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며 회개하여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악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4) 

앞에서 밝힌 대로, 악인이 만약 과거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여 심판을 모면하고 살 수 있다면, 이와 동일한 원리로, 의인이 과거의 의로운 행위를 버리고 죄악의 길에 들어서 죄악을 행한다면, 그는 과거의 의로운 행위의 공로로 구원받지 못하고, 현재의 악한 삶으로 심판을 받아 죽게 될 것임이 분명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의 공로는 현재의 심판에 그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함을 잘 드러낸다. 하느님의 심판 기준은 현재의 삶이지, 결코 과거의 삶이 아니다.


유다 왕 우찌야 경우 선견자 즈가르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느님 대전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후에 왕권이 강화되자 교만한 마음이 들어, 마침내 패악한 짓을 저지른 사건을, 오늘 성경 본문을 이해하게 하는  실제적 사례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사제들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주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행하려다가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는 벌을 받는다. (2역대 26,1-21)

사도 바오로 코린토 후서 10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라는 말씀을 함으로써, 본문의 교훈을 상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영적 능력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가운데 겸손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주님이 제시하는 의로운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겠다.

 

 

 

사순 제1주간 금요일

 

하늘에 묶이면 자유롭습니다. 

 

(마태 5,20-26)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십계명의 제 오계명입니다유대인들은 계명을 철저히 지킨 의로운 사람들입니다그 계명을 지킨 의로움이 아닌 그것을 능가하는 다른 차원의 의로움을 찾아라말씀하십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자기 형제 누구?

 

(요한20,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신 우리의 형제께 그분의 십자가의 길이 바보가 하는 멍청이 짓이라 화를 내며 말하면 당연히 지옥갑니다예수님을 모욕해서가 아닙니다.(마태12,31~참조)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지 못하니 구원의 의로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십자가가 주는 의로움그것이 계명지킴의 자기 의로움을 능가하는 하늘의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그 자기 의로움을 참이라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또 다른 살인입니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형제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받아 죄의식이 떠오르면~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우리 모든 죄의 죗값을 예수님(형제)의 죽음으로 다 갚으셨기에 더 이상 죄 의식을 위한 예물은 없는 것입니다.(히브10,8)

그 깨달음그 화해로죗값을 위한 제사 예물이 아닌 죗값을 위한 제사 예물이 아닌 축제의 감사제(미사-에우까리스티아그 기쁨의 예물로 바쳐라’ 하심입니다.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형제 예수님께서 고소하십니다우리의 창조 목적은 구원의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것입니다.(이사43,7)

 

(요한3,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사랑하는 당신 외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주시어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로 다 용서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그러니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과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거기까지가 구원입니다.

그런데 자기 의로움으로 십자가와 상관없다고 그 예수님의 죽음과 상관없다말한다면 재판을 받아야합니다그러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고집 부리지 말고 타협하라 하십니다사람의 계명에 의한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계명곧 하늘의 의로움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깨달아라그래서 재판에서 감옥에서 나와라 하심입니다.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한 닢에스카톨로지코드란테스 사각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한변이라는 뜻, 4분의 그 ’4의 마지막1‘입니다. 숫자3은 하늘숫자4는 땅이라 했습니다.(삼각과 사각의 그림으로~)

하늘- 3이 땅으로 내려와 땅의 4각의 완성을 이루는데~ 3의 찢어짐(죽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삼각의 꼭지점이 찢어져벌어지면 마지막 한변이 남게 되지요그 비어있는 한변이 채워져 4각의 완성곧 땅의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삼각의 찢어짐이 대속(하늘)의 죽음그 사랑인 것을 깨닫게 되면 그래서 그 사랑을 자신()의 완성을 위한 진리로 받아들이면 그 사랑이 마지막 한변으로 채워져 땅(4)의 완성 곧 구원이 이루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죽음그 사랑이 마지막 한닢(한변)입니다그 사랑 하나를 깨달아 그 사랑으로 모든 죄에서 풀려나는 것입니다그 사랑이 십계명의 각 계명마다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5,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늘의 대속 죽음그 사랑 그 마지막 한닢그 사랑을 주는 것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인간에게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없습니다.(이사64,5 로마10,3참조그래서 나 자신의 의로움()에 묶입니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아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마태5,20ㄴ~26)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2)

 

한글 새 성경에는 단순히 '형제'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원문에는 인칭대명사와 정관사가 붙어 '토 아델포 아우토'(to adelpho autou; to his brother)에 해당하는 '(바로)그의 형제에게'가 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 형제되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형제'는 혈육이나 같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들 뿐만 아니라 비신앙인이나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던 사람까지 포함할 수 있다(루카10,29~37).  


그러니까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사랑으로 감싸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누구나'에 해당하는 '파스'(pas; whosoever)라는 단어는 '전체'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사람은 그 누구나 빠짐없이 모두'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을 자구적으로 해석하면,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예외없이 모두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로운 분노(의노)는 여기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것은 과거 예수님이나 세례자 요한이나 사도 바오로도 악한 자들에게 대해 거룩한 분노를 발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보여진다 (마태3,17; 마르3,5; 사도10,16). 

 

마태오 복음 5장 22절의 '성을 내는 자'에 해당하는 '오르기조메노스'  (orgizomenos; who is angry with-without a course)가 일시적인 흥분을 나타내는 '튀모스'(thymos)와 달리, 주로 악한 뜻을 가지고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킨다. 더욱이 표준 원문에 삽입된 '까닭없이'에 해당하는 '에이케'(eike)는 정당한 사유없이 자신의 감정이나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분노를 가리켜준다.

예수님께서 이와같이 악한 뜻(악의)을 가지고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을 살인하는 죄로 규정하시는 이유는 많은 경우의 살인이 바로 성을 내고 미워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실제적 행위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동인(動因)인 그 마음에까지 살인하는 죄를 확대 적용하고 계신 것이다. 

 

여기서 '바보'에 해당하는 '라카'(Raca)는 히브리어 '레크'(req)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레크'(req)는 또한 '황폐하다', '비다'는 뜻을 지닌 '루크'(ruq)에서 유래하여 '빈말', '허사', '헛것'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 '(머리가 텅 빈) 모자란 자'나  도덕적인 정도가 낮은 '사악한 자'를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잡류', '건달'(판관11,3), '무뢰한'(2역대13,7)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고 인격을 모욕하는 심한 욕설이다. 


그리고 '멍청이'로 번역된 '모레'(More; You fool)는 '모로스'(moros)의 호격이다. '모로스'(moros)는 '입을 다물다'는 뜻이 있는 '뮈오'(myo)에서 유래하여 '말하지 않는 자', '우매한 자'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집회서 22장 11절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쓰여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단죄를 넘어선 종교적인 단죄이며, 멸망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라카'(Raca)보다 더 심한 욕설이 된다.

 

이러한 의미의 욕설을 하는 자는 바로 하느님의 고유 영역인 심판권을 남용한 죄를 범한 것이며, 영혼의 살인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는 죄를 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육체적 목숨을 해치는 것 뿐만 아니라 인격을 모독하여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것까지 살인으로 규정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살인의 새로운 기준이요 동인인 내적인 분노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그러한 자가 받게 될 형벌이 재판 받음, 최고 의회에 넘겨짐, 불붙는 지옥에 넘겨짐으로 묘사하신다. 이것은 그 형벌의 정도가 점차 심해지는 삼중 점층법적 묘사가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지옥'으로 번역된 '게엔난'(geennan; hell)의 원형 '게엔나'(geenna)는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까이'(gai)와 예루살렘의 원주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힌놈'(hinnom)이 결합되어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을 갖는 '까이힌놈'(gaihinnom)의 음역(소리나는 데로의 번역)이다.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는 예루살렘 남쪽과 남서쪽 사이에 있는 깊은 골짜기인데,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가나안의 우상인 몰록에게 바치는 인신제사가 행하여졌으므로(2열왕23,10) '살육의 골짜기'로도 불리워졌다(예레19,6).


이처럼 이곳은 사람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사지냈던 끔찍한 범죄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쓰레기들이 태워져서 늘 연기가 나며 불이 타오르는 더럽고 공포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범죄한 자가 죽은 후 들어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장소인 '지옥'을 '힌놈 골짜기'에 비유하였다. '힌놈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희랍어 '게엔나'(geenna)가 '지옥'으로 번역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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