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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종의 십자가만이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
작성자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7 조회수831 추천수1 반대(0) 신고

 

우리는 지금 부활을 향해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했을 때 만끽할 수 있는 기쁨일 것입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죄를 극복해야만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부활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하고 십자가와 함께 죽고 십자가와 함께 부활한다는 공식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부활을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복음 이전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 다음에 오는 부활의 모습을 미리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지만 제자들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한마디로 불안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과 함께 모세와 엘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구름 가운데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모두들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구름은 성경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상징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건 하느님의 목소리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공표하시면서 아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명령을 하신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말씀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말씀 이면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난과 죽음이 있어야 하고 그 속에는 필연코 십자가를 벗어나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저는 묵상해봅니다. 복음에 앞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연관지어 이 십자가가 무엇인지 한번 묵상하고자 합니다. 아들의 말을 들어라는 명령은 곧 하느님의 말씀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하느님께 바치라고 하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느님의 이 말씀이 자기에게는 하나의 십자가였을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삭을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하나의 십자가일 것입니다. 하느님께 순종을 할 생각을 했지만 그도 사람인데 모리야 산을 오르면서 인간적으로는 온갖 번민으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왕 번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순종의 마음을 시험을 하시려면 굳이 사흘이나 걸리는 장소에 있는 모리야산까지 가게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그냥 단숨에 순종하는 것과 고통 속에서 순종하는 모습이 조금은 차이가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힘든 심적인 고통 속에서도 순종하는 모습 말입니다. 어쩌면 중간쯤에서 그 마음을 보시고 이 정도면 순종하겠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중간쯤에서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할 수도 있으셨을 텐데 왜 굳이 끝까지 모리야 산에서 최종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번 마음을 먹었다고 완전히 초지일관 계속 같은 마음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지의 시험일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다가 결정적으로 이삭의 생명에 위해가 가해지는 순간까지 하느님께서는 유보를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더 이상 물러서실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 제동을 거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아브라함을 제지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마음속에 품었던 십자가를 끝까지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영예까지 얻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축복은 예수님의 말씀인 곧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오는 축복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모된 모습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려면 예수님처럼 수난을 겪어야 그런 모습으로 변화를 입을 것이라는 것을 예표해 주신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부활은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아브라함처럼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모리야산을 향해 걸어가면서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항구하게 지키면서 잘 지고 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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