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28.“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7 조회수1,356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르 9, 2-10(사순 2 주일)

 

오늘은 사순 2 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말 한마디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22,17)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준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그리고 <복음>에서,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이 세 이야기는 모두 산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제1독서>는 모리야의 산에서, <제2독서>는 갈바리 산에서, <복음>은 타볼 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처럼, 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준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것을 바쳐라 하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했습니다.

늦게야 얻은 아들, 자신을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줄 보증수표인 아들, 그는 자신의 분신이요 자신의 미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미래와 종족의 미래까지도, 온전히 모조리 바쳐라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벼랑으로 끌고 온 것은 그를 벼랑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벼랑을 건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벼랑 건너에는 더 낳은 미래가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정한 미래를 주기 위해서는 벼랑까지 끌고 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요, 무조건적인 승복의 요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끄심에 따라, 비로소 자신의 희망과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과 믿음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였습니다. 이는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말합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로마 4,16)

 

이처럼, <제1독서>가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인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는 희생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2독서>는 반대로,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인간을 위해 내어주신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준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줍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이 말씀은 세 가지 사실을 암시하고 밝혀줍니다.

첫째, “너는 내 아들이니”란 말의 출처는 <시편> 2편 7절,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로, 이는 온 땅을 다스리게 될 왕인 메시아에 대한 선포입니다.

둘째, “내 사랑하는”이란 말의 출처는 이미 <제1독서>에서 본 <창세기> 22장 2절,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로, 이는 머지않아 십자가에 바쳐지게 될 희생을 암시합니다.

셋째,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신명기> 18장 15절, “주 너희 하느님께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로, 이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보내겠다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입니다.

결국, 구름 속에서 들려온 이 말씀은 예수님이 왕으로서의 메시아요,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아요, 예언자로서의 메시아임을 밝혀줍니다.

한편, 세례 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21)에 나오는 “내 마음에 드는”이란 말의 출처는 <이사야> 42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로, 이는 종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선포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깨우쳐주십니다.

그것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들려주신 말씀이 우리 안에서 성취도록 말씀께 승복하는 일입니다.

말씀께서 우리를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자신을 허용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그야말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요 장소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말씀을 주인 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주님을 주님 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모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의 모습으로 바뀌어 걸 것입니다”(2코린 3,18 참조). 이 건물(초막)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게 될 것입니다.’(에페 21-22 참조)

이 변모가 바로 사순절의 근본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명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자신을 외아들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번제물로 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주님!

말씀 아래에 머물게 하소서.

말씀께 제 자신을 건네 드리게 하소서.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제 자신을 허용하게 하소서.

말씀이 제 안에서 성취되도록 저를 승복하게 하소서.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