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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8 조회수1,075 추천수0 반대(0) 신고

 

유산소 운동을 하면 폐활량이 증가하게 되고 심폐기능이 좋아져서 몸이 건강하게 되는 건 일반적으로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건 후천적인 노력이 따르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인자와 별개로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린 것입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면도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도 생각만큼 몸에 하나의 습관처럼 되지 않으면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폐활량을 키우는 것 또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폐활량을 키우는 데 좋는 활동 중 하나가 등산이 있습니다. 등산은 상당히 힘든 운동이라면 운동입니다. 상당히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합니다.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찰 정도로 격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일정 시점에서는 호흡하기 가장 힘든 시점이 옵니다. 이를 일명 사점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죽는 지점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근데 등산을 하다보면 이 사점에 도달하기까지는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 사점을 어느 시점에서 참고 잘 견디면 극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 시점을 잘 넘기는 훈련을 잘 해야 등산을 통해서 폐활량을 좋게 할 수가 있을 겁니다. 물론 쉬엄쉬엄 하면서 산을 올라가도 등산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심폐기능을 좋게 하려면 이만한 고통도 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선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하십니다. 복음 말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게 좋은 것이라는 건 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냥 자비로워야 한다고 해서 자비롭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인위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 선천적으로 타고난 심성이 착하고 여리며 동정심이 많은 사람은 굳이 누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하지 않아도 자비로운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특이한 경우라고 치부했을 때 보통의 범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게 잘 적용이 되지 않을 겁니다.

 

성경에는 온갖 좋은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훈육에 관련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말씀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서는 그렇게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자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자비로울 수 있도록 하는 요소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마음의 그릇이 커야 될 거라고 봅니다. 불교에서도 그렇지만 우리 가톨릭에서도 대자대비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자비도 대소가 있는 것처럼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자비로운 마음도 마음이 커야 다시 말해 도량이 커야 그에 비례해서 자비로운 마음도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비의 도량도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등산이나 조깅처럼 숨이 찰 정도의 유산소 운동을 통해서 심폐기능을 키우듯이 인위적인 노력이 수반이 되지 않으면 되지 않을 거라고 보여집니다. 그게 단순히 쉽게 될 요량이면 우리가 그렇게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그토록 듣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만큼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반증이지 않을까요. 

 

냉정하게 따지면 자비는 남을 위해 남을 향해 자비를 베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남을 위해 자비를 베풀면 그 자비가 하느님이 베푸시는 자비로 부메랑이 되어 자신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는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비를 이런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다다익선처럼 자비를 베풀면 베풀수록 자신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적으로도 유익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대명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랑보다도 더 심오한 사랑이 자비입니다. 자비는 사랑이라는 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입니다. 그럼 당연히 일반적인 사랑도 허물인 죄를 덮을 수준이면 자비는 덮고 가리는 수준을 넘어 아예 없애는 수준까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 크기만큼이나 세상을 향해서 또는 남을 향해서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비로운 마음도 공부처럼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하고 해야 우리가 자비로울 수 있는 품성을 가질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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