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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3.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3 조회수1,449 추천수4 반대(0) 신고

 

(제주 교구 순교 사적지, 용수 성지)

2021년 3월 3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봉쇄

조치로 가정 폭력이 증가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또 성폭력과

신체적 학대 등 사람들의 공격적인

행위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현상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봉쇄 조치로 형제적 사랑의 감정이

표면화되면서 가족 간의 유대가 더욱

깊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는 자식들과 놀아줄 시간이 더 많아졌고,

부부는 모든 문제를 더 깊이 상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하고 집에만 있는 남편이

미워죽겠다는 어느 자매님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남편을 전에는

남편의 바쁜 직장 생활로 밤에만 보다가

이제는 온종일 집에서 봐야 하니 너무 힘들어서

못 살겠다며 황혼 이혼을 이야기합니다.

이 역시 함께 사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함께 살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인류의 영장이 된 것은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이를 거부하면 오히려 뒤로 가는 퇴보를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돈과 권력이라는 힘으로 “나를 따라라.”

라고 억누르면 될까요?

이 방법을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모으려고 하고,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단지 힘으로 억누르며 함께

사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뒤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청한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는 청에 대한 답을 해 주십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백성에게 세도를 부르지만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이 구절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되다’라는 동사의

미래형이 사용되는데, 여기에 부정어 ‘아니’와

함께 쓰일 때는 ‘엄격한 금령’을 뜻하게 됩니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입니다.

세상의 권력자처럼 살려고 하면,

세상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주님과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고, 종이 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은 눈 먼 것이 아니다.

더 적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본다.

다만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더 적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랍비 줄리어스 고든).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라디오에서 노래를 듣다가

이런 노래 가사를 들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연어는 고향에서 산란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회귀본능이라고 하며,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연어가 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느라 지쳐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생물학적 프로그램

때문에 죽는 것일까요?

둘 다 아니었습니다. 연어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을

엄청나게 분비한 뒤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는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즉, 연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이것이 사망 이유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스트레스 호르몬은 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삭 늙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들 젊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법칙만을 따르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법을

따르고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가장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주 교구 순교 사적지, 용수 성지의 김대건 신부님 유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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