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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저자가 상속자다.(마태21,33-43.45-4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5 조회수78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3월 5일 금요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저자가 상속자다.(마태21,33-43.45-46)

  

1독서꿈쟁이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창세37,3-4.12-13.17-28)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그들은 그의 저고리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화답송 시편 105(104),16-17.18-19.20-21(◎ 5ㄱ 참조)

◎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

○ 그 땅에 기근을 불러일으켜양식을 모두 끊으셨을 때한 사람을 그들 앞에 보내셨으니종으로 팔려 간 요셉이라네

○ 사람들이 그의 발에 족쇄 채우고목에는 쇠사슬 옭아매었네마침내 그의 말이 들어맞아서주님 말씀이 그를 보증하셨네

○ 임금이 사람을 보내 그를 풀어 주고민족들의 통치자가 그를 놓아주었네그를 왕궁의 주인으로 내세워모든 재산을 다스리게 하였네

 

복음<저자가 상속자다>(마태21,33-43.45-46)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37,3-4.12-13ㄷ.17ㄹ-2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18~20)

 

'음모를 꾸몄다'에 해당하는 '와이트낙켈루'(waithnakellu; they plotted; they conspired against)에서 원형 '나칼'(nakal)은 '사기하다', '죽이다'(말라1,14), '유혹하다', '속이다'(민수25,18)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는 재귀형이 쓰였는데이것은 '악한같은 일을 꾀하다', '망나니같은 행동을 하다'라는 뜻이다.

 

요셉이 다가오기 전에 그의 형들이 취한 행동에 대해서 이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쓰인 것은이미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의 생각이 악하며또한 그같은 일을 저지르기로 그들이 마음에 작정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살인하기 전에 화내지 말라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뿐만 아니라 고향으로부터 100km가 넘는 지역에서 동생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악한 계략을 먼저 마음에 떠올린다는 것은 요셉을 향한 그들의 미움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에 해당하는 '힌네 빠알 하알로모트 할라제 빠' <hinne baal hahallomoth hallaze ba; (Behold) here comes that dreamer!> 에서 '빠알'(baal)은 '주인'(탈출22,7), '남편'(2사무11,26), '소유자', '주인' (욥기31,39) 등의 뜻이 있다.

 

그리고 본문 끝에 나오는 단어 '할라제'(hallaze)는 새 성경에 번역되어 있지 않는데형용사로서 '저쪽에혹은 '이리로'(here; this)라는 뜻이 있다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보라 꿈들의 주인이 저쪽에 있다'이다이것은 형들이 요셉의 꿈을 언급하면서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요셉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까지 접근했을 때먼 여정과 방황으로 인하여 지치고 초췌해진 동생의 형편없는 모습과 꿈속에서 묘사했던 요셉 자신의 고상하고 당당한 모습을 요셉으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해서 스스로 자기 꿈에 대해 좌절과 불신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37장 20절의 ''에 해당하는 '웨앗타'(weathah)의 원형 '앗타'(athah)는 '시간'을 뜻하는 '에트'(eth)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과거나 미래와는 대조되는 현재(new), 즉 '지금'(여호14,11)이라는 시점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말하자면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그러한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금'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하자'로 번역된 '레쿠'(leku; come)는 '오다'는 뜻이 있는 '할라크'(hallak)의 복수 명령형으로서 '우리 ~을 합시다'라는 뜻을 가져서 앞의 '웨앗타'(weathah; new)와 어울려 매우 선동적이고 긴박감 넘치는 광경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리고 창세기 37장 19절에서는 이 행동의 선동자가 '서로'인 것으로 나타난다이것을 볼 때 요셉의 형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저 녀석을 죽여서'에 해당하는 '웨나하르게후'(wenahargehu)의 원형 '하라그'(harag)는 '살육하다', '도륙하다', '죽이다'(창세20,4)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창세기 37장 18절의 '무트'(muth; '죽이려는')와 비교해 볼 때 사람을 죽임에 있어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더욱 더 강한 분위기를 전달한다이것은 분노와 원망이 가득차 사람을 처절하게 죽이고자 할 때 사용하는 강한 단어이다.

 

창세기 37장 초반부터 형들이 요셉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미움이 억제되지 않고 오히려 크게 증폭되어 가고 있다가결국 자신의 형제를 참혹하게 죽이고자 계획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첫 시점에서 동생 아벨을 미워하다가 동생을 살인하여 죄의 종이 되어 버린 카인의 악이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창세4,7; 갈라5,16참조).

 

그리고 '던져 넣고'에 해당하는 '웨나쉴리케후'(wenashillikehu)의 원형 '살라크'(shallak)는 '던져지다'(아모8,3), '쫓아내다'(2열왕24,20)의 뜻이 있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쓰레기를 버리듯이 구덩이에 요셉의 시체를 버리려고 하는 형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요셉에 대한 분노의 깊이를 짐작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심과 도덕마저 바로 이 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음을 보여 준다.

또한 가나안 땅은 다양한 기후와 지형이 있어서 산악 지대평야 지대계곡사막 등이 혼재하는 곳인데요셉이 형들을 찾아 떠난 헤브론에서 세켐까지의 거리는 대략 100km가 되며산지대로 연결된 지역으로 여러 종류의 짐승이 살았다.

 

더욱이 여기서 '사나운 짐승'으로 번역된 '하야 라아'(hayah raah)는 '야생 동물'을 뜻하는 히브리어 관용구이다.

따라서 형들의 계획은 죽이려는 것 뿐만 아니라 살인을 행한 후 시신을 처리하는 것까지도 생각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는 원문의 뜻은 '그의 꿈들이 무엇이 될지를'이다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당돌한 꿈 이야기에 심한 분노를 갖고 있었기에 조롱하는 어투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요셉을 죽이면임금이 되겠다던 요셉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순 제2주간 금요일

 

깨닫는 신앙에 용서가 있습니다. (마태 21,33-39)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신앙과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신앙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신앙에 용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밭에덴이며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그 하늘나라가 성경 속에 들어있습니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포도밭 임자하느님의 몫은 피조물들의 영광 받으심입니다.

 

(이사43,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영광(독사)- 하느님의 신성과 사랑이 드러나 나타난 것영광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그 이타적 사랑(아가페)의 빛입니다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죽음그 십자가의 사랑이 하느님의 영광입니다그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인들의 구원이라는 소출을 얻었습니다.

그 구원 받은 우리들은 그 십자가의 사랑 그 영광의 감사 찬송을 하느님께 드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감사의 찬송으로 영광을 돌려받으시는 것하느님의 몫의 소출입니다포도밭의 그 모든 소출이 있습니다.


28절 이후에 두 아들에게 포도밭 일을 시키십니다맏아들은 '싫다'고 하다 생각을 바꾸어 갑니다다른 아들은 '가겠다'하고 가지 않습니다.

(마태21,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누가 실천하겠느냐물으시고 곧바로 세리와 창녀들의 구원을 말씀하십니다포도밭에 너희 같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이 받는 소출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인들의 구원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포도밭의 일을 시키신 것입니다그 구원의 하느님의 계약약속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포도밭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우리들이 찾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계약구원의 약속입니다그리고 그 성경(신구약)은 모두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리로 말하고 있습니다.(로마1,2 요한5,39참조)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깨닫지 못해 예수님의 죽음으로 실망하며 낙향하는 제자들에게~

(루가24,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들아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성경을 도덕과 윤리의 수준으로 매일 읽고 쓰고 묵상한다면 그는 구원이라는 소출을 얻을 수 없습니다헛된 시간헛된 신앙이 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의 죗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시려 속죄 제물로 오셨습니다.(마태20,28 요한3,16 1요한2,2 참조그 이유는 어제 예레미야 17,5절 이하를 통해 묵상 햇듯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가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2,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속죄 제물로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으셨고그래서 그 죗값을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다 이루어졌다’ 하시고 대속의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 속에 감추어져있는 구원의 약속엔 십자가로 다 이루신그래서 거저 얻는 용서구원의 의로움은 찾지 않고 왜제사와 도덕과 윤리그 인간의 지혜로 읽어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위한 책으로 읽습니까?

그러면 성경이예수님과 한몸이 되지 못하는분리시키는 이혼증서가 됩니다이혼증서(케리투투-분리하다나누다)!

그러면 우리의 창조의 목적인 하느님의 사랑그 아가페 사랑에 감사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소출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출을 요구하는 일꾼들을 죽이게 됩니다. (우리들도 그 소출을 말하면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하느님은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은 구원그 소출만을 끝까지 찾으십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착각입니다.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구원의 소출은 한 길 뿐입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골로3,24) 주님에게서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여러분은 주 그리스도의 종이 되십시오.

하늘의 상속 재산을 위해 예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그분의 대속(십자가그 하늘의 의로움이 구원의 참 진리임을 깨닫고 사람의 지혜에 의한 그 의로움은 구원의 능력 없음을 깨닫는 자기 버림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코린2,4-8)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 아멘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태21,33~43.45~46)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그러자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35~39)

 

'소작인들'로 번역된 '게오르고이'(georgoi; tenants; husbandmen)는 '게오르고스'(georgos)의 복수 주격으로서농토를 일정 기간 차용하여 일정한 비율의 세를 내고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을 가리킨다.

여기 포도원의 소작인들은 이처럼 주인과 계약을 마친 일꾼으로서유대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마르12,12; 루카20,19).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는 이 소작인들이 행한 악행이 세 가지로 묘사된다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동사들이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이다그러니까 여기서 핍박받은 종들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매질하고'로 번역된 '에데이란'(edeiran; beat)은 '데로'(dero)의 부정 과거형인데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레위1,6; 2역대 29,34; 35,11).

말하자면, '데로'(dero)는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맞는 희생적 고난의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이다.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서도 종들이 소작인들에게 맞는 것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구약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동물들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과 같은 희생을 말한다.

그리고 '죽이고'로 번역된 '아페크테이난'(apekteinan; killed)는 '아포크테이노'(apokteino)의 부정 과거형이다.

'아포크테이노'(apokteino)는 '죽이다'는 의미의 동사 '크테이노'(kteino) 앞에 강조하기 위해 '아포'(apo)라는 전치사가 결합되어 처절한 죽음을 나타낸다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겪게 될 순교적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로 번역된 '엘리토볼레산'(elithobolesan; stoned)은 '리토볼레오'(lithoboleo)의 부정과거형으로서 '돌을 사람이나 짐승에게 던지다'는 뜻이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는 의로운 박해를 받는 예언자나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루카23,37; 사도7,58.59).

 

여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들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을 사악한 방법으로 계속 박해하는 것으로 묘사된 소작인들은 바로 그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제 마태오 복음 21장 36절에는 주인이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내는 것으로 나온다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팔린'(palin; again)은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음을 가리킨다.

주인의 종들을 잔인하게 죽은 소작인들을 즉각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자비로운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더 주고 있다.

 

'많은'으로 번역된 '플레이오나스'(pleionas; more than)는 '플레이온'(pleion)의 형용사 비교급으로서보다 많은 수의 종들이 파견되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주인으로 비유되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비유되고 있는 소작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인내하시면서그들이 뉘우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또 한번의 기회를 허락하셨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완고하고 사악한 소작인들은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주인의 사랑과 인내를 저버리고처음처럼 주인이 보낸 종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아들은 존중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주인의 아들을 보내게 된다.

 

마태오 복음 21장 37절에서 '마침내'로 번역된 '휘스테론'(hysteron; last of all)은 어떤 일의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수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주인의 비참한 심정을 가리킨다.

 

여기서 '존중해 주겠지'로 번역된 '엔트라페손타이'(entrapesontai; they will respect)는 '엔트레포'(entrepo)의 미래형으로서, '엔트레포'(entrepo)는 '~안에'라는 의미가 있는 전치사 ''(en)과 '돌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트레포'(trepo)의 합성어로서 '빙 돌다', '방향을 바꾸다'는 뜻을 가진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존경하다'는 뜻과 '부끄러워 하다','무시하다'는 두 가지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완고하고 사악한 마음이 바뀌어예수님께 대해 공경해 줄 것을 바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기대감이 들어 있다.

특히 시제가 미래라는 것은 악한 소작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주인의 심정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21장 38절 이하에서 주인의 아들을 상속자라고 하면서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리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고자 한다.

여기서 '상속자'로 번역된 '클레로노모스'(kleronomos; heir)의 첫번째 의미는 '기업', '유산', '유업'(heritage)이다.

구약 성경에서 '유업'의 뜻을 가진 '나할라'(nahalah)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가리키며이 땅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되었다(신명20,16; 21,23).

 

이스라엘 백성은 각 지파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하느님께서 주신 유업으로 알고자기 지파 안에서만 상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그러나 바빌론 유배기를 통해 가나안 땅의 유업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유업을 희망하게 되었는데그것은 의인들이 메시아가 도래할 때 갖게 될 것으로 믿었던 몫이었다(다니12,13).

 

이 유업에 대한 희망은 메시아 대망 사상과 연결되어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때 새로운 유업을 가질 것을 기대했다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러한 유업을 희망하여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유업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영적으로 이루어졌다(갈라3,16).

그러나 악한 소작인들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유업을 차지하는 대신에 그를 맞서서 죽이려고 했다.

 

그 원인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아관이 죄에서 구원을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관이 아니고자신들을 현실적인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영적인 유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크나큰 잘못을 범했던 것이다.

   

2019년 3월 22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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