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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聖 남종삼 요한님의 순교 (순교일; 3월7일)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7 조회수1,183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남종삼 요한님의 순교

                  

(순교일; 3월7일)

 

 

 

 


베르뇌

시므온

새남터

1866.3.7

도리

헨리코

새남터

1866.3.7

블리외

루도비코

새남터

1866.3.7

랑페르 브르뜨니에르

유스토

새남터

1866.3.7

남종삼

요한

서소문 밖

1866.3.7

 
 

 

 

 

 

 

 

 

 

 

 

 

 

 

   聖 남종삼 요한

   관 련  서소문 밖순교일1866.3.7



 

 

 

남종삼님은 충청도 충주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님의 양자가 되셨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님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셨다.

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으셨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님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님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를 앞세운 포졸들에게 체포되셨다.
그는 국청에서 6차의 국문(鞠問)을 받고 3월 7일 5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홍봉주와 함께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
 

 

          

 

 

 
 
 
 

의덕과 겸손의 정3품 청백리 승지였으나

교회를 박해하는 국가에서 어렵게 신심을 지키다가

50세에 서소문 형장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쓰신
성 남종삼 요한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모든
사회 지도자들이

주님 안에서의 바른 길을 걷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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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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