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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4,24ㄴ-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8 조회수80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3월 8일 월요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4,24-30)

 

 

1독서<나병 환자 시리아 사람 나아만>(2열왕5,1-15)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써 보낼 터이니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로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12 다마스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화답송 시편 42(41),2.3; 43(42),3.4(◎ 4241,3)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하느님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 제 영혼이 하느님을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저를 인도하게 하소서당신의 거룩한 산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하느님저의 하느님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복음<예수님께서는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루카4,24-30)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삼년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열왕5,1-15ㄷ)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 질 것입니다." (10)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그러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4)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라는 엘리사의 명령은 율법의 명령이다.

"정결하게 되려는 이는 자기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민 다음에 물로 몸을 씻으면 정결하게 된다그리고 그는 진영으로 들어가 자기 천막 밖에서 이레 동안 머무른다이레 째 되는 날에 그는 다시 털을 모두 민다머리탈과 수염과 눈썹까지 털을 모두 민다그런 다음 옷을 빨고 물에 몸을 씻으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레위14,8.9)

 

그러나 율법에서 몸을 씻는 것은 나병이 완전히 고쳐지고 나은 다음에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거하는 상징적인 의식 행위였다그런데 열왕기 하권 5장 10절에서는 깨끗하게 되기 위한 예비적 동작으로 몸을 씻는 행위를 명령한 것이다그러니까 의미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예수님께서 한 소경을 치유하실 때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요한9,7) 하시니이에 소경이 즉시 순종하여 가서 씻었드니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다시 말해서 엘리사가 나아만으로 하여금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게 한 것은 치유를 위한 행위이거나 치유 후 행하는 의식적 행위에 대한 명령이라기 보다는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이다그리고 그것도 일곱 번이나 씻으라고 한 것은 완전한 순종에 대한 요청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인내까지도 포함된 명령인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하다','만족시키다'란 뜻의 히브리어 '샤바'(shaba)에서 온 말이 일곱(shibah)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일곱'을 '완전(충만'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예리코성을 점령할 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렛날에는 사제 일곱 명이 뿔 나팔을 부는 가운데 에리코 성읍을 일곱 번 돌아라고 명령하신 말씀(여호6,3-5)과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 끝에 엘리야가 자기 시종에게 비올 증거를 찾는데 일곱 번을 다녀오라고 명령한 것(1열왕18,43)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일곱 번씩이나 같은 행위를 하게 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지 못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만 치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고찰해 볼 때엘리사의 명령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나아만의 교만을 부수기 위한 것이다.

외연상으로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군인 반면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예언자에 불과했기에 나아만이 교만한 자라면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교만한 자에게는 하느님께서 결코 당신의 전능과 은총을 베풀지 않으신다.

 

"주님을 경외함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의 길을,사악한 입을 미워한다." (잠언8,13)

"주님께서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역겨워하시니 그런 자는 결코 벌을 면치 못한다." (잠언16,5)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야고4,6; 잠언 3,34)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루카16,15)

 

둘째로나아만의 나병이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치유됨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술 행위가 사용되었다그런데 엘리사는 그러한 처방은 커녕(1열왕5,12),아주 평범하게 여겨오던 혼탁한 요르단 강에서 씻으라는 처방을 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14)

본절의 '내려가서'라는 말속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다.

첫째로나아만이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다는 뜻이다당시 엘리사가 있던 곳은 사마리아 땅의 고지대이므로 나아만은 상당한 거리를 여행하여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둘째로나아만이 예언자의 말에 순종했다는 것이다그리고 '몸을 담갔다'에서 '담그다'라는 말은 몸에 물을 완전히 적시거나(2열왕8,15) 물속에 몸을 전부 집어넣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모세오경에는 이 단어가 '피에 찍다'(레위14,6),'기름에 담그다'(신명33,24), 사무엘 상권 14장 27절에는 '꿀을 찍어'라는 뜻으로 쓰였다따라서 나아만은 예언자의 명령에(1열왕5,10) 보다 더 철저하게 몸을 씻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만이 병이 치유되고 그가 어린아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진 것은(1열왕5,14) 그의 철저한 순종적 행위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본절에 나타난 '일곱 번'은 나아만이 엘리사의 요구에 얼마나 철저히 순종했는가를 나타냄과 동시에 나아만의 나병이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 치유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일곱은 하느님의 완전함과 충만함을 뜻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사순 제3주간 월요일고향방문 (루카4,21-30)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 가치관으로 유혹하는 그 악마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예수님께서(루가4,1-13)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4,18-19) 

예수님의 대속으로 얻는 속죄해방의 기쁜 소식복음을 주십니다.

 

(레위25,8-11)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1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속죄일어린양의 대속으로 얻는 죄의 용서자유그 안식쉼의 날입니다희년은 안식을 지키는믿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안식은 일곱(7)입니다.


(창세2,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창조는 육일 동안 이루어 졌습니다그 창조 육일 안에 쉼안식을 누리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속죄입니다어린양 예수님의 사흗날의 대속의 죽음그 사랑입니다.

창조 사흗날(제라-후손예수의 희생그 사랑입니다희년은 그 하늘의 희생(대속), 죽음그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말씀은 시간과 공간에 갇히지 않습니다말씀은 늘~오늘지금입니다지금 일하십니다.(로마8,28참조믿기만 하면기쁜 소식-복음입니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복음그 말씀으로 쉼안식을 깨닫지 못한 놀라움입니다그것은 목수의 아들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말씀이시며 생명안식이신 주님을 못 알아봅니다.


(요한1,4-5.14)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하늘의 희생그 사랑을 깨닫지 못해 짝하지 못한 과부입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그 안식의 사랑과 짝하지 못해()이 썩어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듯 영()이 죽어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나병입니다창조 육일 그 속에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그 모든 말씀속에죄인들의 용서그 안식을 위한 씨()의 죽음그 사랑 하나만 들어 있습니다.


(요한7,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사도13,39.41) 39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41 ‘보아라너희 비웃는 자들아놀라다 망해 버려라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하리라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어도 너희가 도무지 믿지 못할 그런 일이다.’”

예수님의 대속을 진리로 믿는 다는 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믿지 못할 일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을 치료할 때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합니다.

(2열왕5,11.13-14)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나아만이 성을 내며 발길을 돌리려 합니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인간은 자신들의 그 어떤 행위에 가치를 둡니다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삶보다 그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의 행위로 이루려합니다그리고 열심한 그 종교행위가 재미도 있습니다무언가 하고 나면 뿌듯하기도 합니다사람들이사제께서도 알아봐 주며 칭찬을 합니다그러나 그 모든 것 혐오스러운 불법이라 하십니다.(루가16,15 마태7,23참조)

깨달음을 위한 삶은 오롯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이기에사람들의 눈에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사람으로또 믿음 없는 불성실한 신자로 보여 무시하며 이상하게 보기까지 합니다그래서 육적으로는 외롭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꼭 잡고 계심을 알기에 마음은 으로 충만해 참 삶을 살아갑니다사람들이 알아주는 신앙은 시련이 오면 불안 근심으로 넘어지지만하느님께서 알아주시는 신앙은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며 알아주는그래서 자신도 뿌듯해 하는 그 좋아하는 길그 길을 사람들은 버리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자신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 (마태16,24)하신 것입니다.

 

(요한5,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하셧듯이 오늘그들의 헛된 신앙헛된 그 속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그들의 헛된 그 속마음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부수시고 가십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을 부수십니다그러나 믿음으로 이끄시기 위한 부수심입니다.

땅의 것을 바라는 사람은 부서짐이 어렵지만하늘의 것을 희망하는 사람은 땅의 것에 허망함을 알기에 어렵지 않습니다그 세상의 것을 부수기 위해 하느님의 계명과 말씀 속에 숨겨진 안식을 위한 한가지 일곧 대속의 예수님을 진리로 깨닫기 위한 공부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진리와 짝하여 하늘의 안식()을 삽니다.

♡ 아멘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복음(루카4,24ㄴ~30)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삼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5~26)

 

예수님께서는 당신 고향 사람들이 당신을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과 유사한 일이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의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하늘이 닫혀'에 해당하는 '에클레이스테 호 우라노스'(ekleisthe ho ouranos; the heaven was shut)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셨음을 나타내는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이다.

 

열왕기 1권 17장과 18장에 의하면엘리야 시대의 가뭄은 3년이었다 (1열왕17,1; 18,1.2.45).

하지만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때의 가뭄이 3년 6개월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시고야고보 사도 역시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야고 5,17).

 

이같은 차이는 열왕기 저자가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기간을 빼고만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계산한 반면에예수님과 야고보 사도는 늦은 비가 내리는 4월과 이른 비가 내리는 10월 사이의 건기 기간도 비가 내리지 않았던 기간에 포함시켜 보다 정확하게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비가 온 때가 4월이었고(1열왕17,1), 3년 후에 비가 내린 때가 10월 이었다면(1열왕18,1.2.45), 엘리야 시대의 가뭄이 계속된 기간은 정확히 3년 6개월이 되는 셈이다.

 

한편이러한 3년 6개월이라는 기간은 신구약 중간 시대의 시리아의 통치자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nchus Epiphanes) 박해 이래로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말하자면, 3년 6개월이라는 기간은 큰 재앙과 시련의 기간으로 유대인들에게 인식되었던 것이다그리고 이 재앙과 시련의 기간은 엘리야 시대의 가뭄의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아합 임금은 그 심각한 가뭄을 염두에 두고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자'라고 비난했으며(1열왕18,17), 엘리야는 그 심각한 가뭄이 아합 임금의 우상 숭배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정확히 지적하며, '임금님과 임금님 조상의 집안이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1열왕18,18).

 

한편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있다는 사실을 엘리야가 그 혹심한 가뭄의 시기에 이방의 한 가나안 과부에게만 대접받았다는 사실을 들어 지적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엘리야 시대에도 그의 고향 사람들이 예언자를 대접할 줄 몰랐듯이예수님 시대에도 당신의 고향 사람들은 메시야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뭄 때에 엘리야 예언자는 크릿 시내에 머물다가 그곳 물마저 마르자 (1열왕17,3~7)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간다(1열왕17,9~10). 시돈은 팔레스티나 북부 이방 지역 중의 하나이므로엘리야는 이방 땅으로 보내진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와 명령에 근거한 것이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에는 그 혹심한 가뭄의 시간에 엘리야를 대접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예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 상황과 비슷하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거 엘리야의 예를 들어 당신의 처지를 설명한 것이다.

 

한편구약에서는 '차레팟트'(tsarephath)로 불린 지명이 예수님에 의해서 '사렙타'로 불리웠는데이것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예수님의 모국어)의 발음상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사렙타'는 티로와 시돈 사이에 위치한 한 성읍으로서 '제련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오늘날에도 'Surafend'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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