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0 조회수2,142 추천수7 반대(0)

우리사회의 위기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위기가 있지만 가장 큰 위기는 기후변화와 인구감소라고 합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도 우리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났던 1960년대에는 매년 10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58년이 지난 2021년에 태어날 아이는 20만 명 내외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추세로 30년이 흘러간다면 대한민국은 엄청난 인구의 감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교육과 국방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3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인구감소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근대주의를 뜻하는 모더니즘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의 자리에 과학이 들어오는 시기, 신의 자리를 국가가 대신하는 시기, 경쟁을 통해서 성장하는 시기,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근대주의는 자본주의를 만나면서 풍요속의 빈곤을 만들어냈습니다. 2번의 세계전쟁은 인간의 지성과 지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빈익빈부익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코로나19 앞에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식(知識)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는 입으로 화살이 들어가는 형상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압니다. 굶주린 사람은 도와주고, 아픈 사람은 보듬어 주고, 잘못했으면 부끄러워하는 것도 배우지 않아도 압니다. 그래서 무지(無知)한 사람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예언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것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무지한 행동입니다. 돈 때문에 형제를 속이고, 양심을 파는 것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무지한 행동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은 것, 다윗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한 것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무지한 행동입니다.

 

()은 소리와 말을 배우는 형상입니다. 아이는 배워야합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배움의 결과입니다. 인류는 사냥하는 법, 농사짓는 법, 불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가르쳤습니다. 예술을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공자의 논어에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즐겁다고 하였습니다. 무식(無識)한 사람은 마땅히 배워서 알아야 할 것을 배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헤로데가 구세주의 탄생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인 것은 무식한 행동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무식한 행동입니다.

 

오늘 독서는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망각했습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나의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무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통과 관습에 젖어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구세주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무식에서 벗어나는 길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겸손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지식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편에 서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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