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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4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3 조회수3,988 추천수7 반대(0)

2019년 안식년을 지내면서 동창신부님과 이탈리아에 있는 돌로미테로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10일 동안 산장에서 자면서 산행하였습니다. 아침 9시에 출발하면 다음 산장까지 오후 4시쯤 도착하였습니다. 점심은 산행 중에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고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산행의 피곤함을 덜어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들에 핀 꽃을 보면서,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일행과 담소를 나누면서 피곤함을 잊습니다. 산행을 이끄는 대장은 적당한 시간에 모두가 지쳐갈 무렵에 쉬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20분 정도 쉬면서 물도 마시고, 짐도 다시 정리하고, 신발 끈도 다시 묶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없다면 산행은 고행(苦行)으로 끝날 것입니다. 잠시 쉬는 시간이 있기에 산행은 지난 날의 삶을 돌아보는 수행(修行)이 됩니다.

 

군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서 매년 유격훈련을 받습니다. 유격훈련에는 계급이 필요 없습니다. 모두가 훈련병입니다. 줄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기구에 매달려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줄에 의지해서 절벽에서 내려오기도 합니다. 훈련을 받기 전에는 체조를 합니다. 조교는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체조에 구령을 붙이도록 하였습니다. 마지막 번호에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소리가 나면 체조의 숫자는 배로 늘어났습니다.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진한 전우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 중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호랑이 같은 조교도 그때는 담배를 나눠 피우는 전우가 됩니다. 장기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고된 훈련의 피곤함을 달랩니다. 유격훈련에 흘리는 땀방울은 전쟁에서 흘릴 피와 같다고 합니다.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은 사순시기를 지내는 교구민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지난해 사순 시기에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미사의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우리 모두의 삶을 혼돈으로 내몰았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하고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회개의 시간인 이 사순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 고통 역시 무의미하지 않고 때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생 여정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과 고통의 여정에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먼 훗날 코로나19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류에게 잠시 뒤를 보게 하였던 성찰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 사순 제4 주일의 말씀은 고된 산행 중에 잠시 쉬는 시간처럼, 유격훈련 중에 잠시 쉬는 시간처럼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폭풍우를 이겨낸 사람이 더 깊고, 넓은 바다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은 폭풍우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이제 곧 유배의 시간이 지나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고난이 끝날 것이라고 희망을 전해 줍니다.

 

오늘 복음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명확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과 같습니다. 해가 뜨면 곧 말라버리는 이슬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며,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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