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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니코데모와의 대화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3 조회수3,243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

역대기 하권의 말씀 36,14-16.19-23

그 무렵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와 해방으로 주님의 분노와 자비가 드러난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온 나라에 명을 내리고 칙서를 반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한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 2,4-10

형제 여러분, 4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5-6절에는 이른바 실현된 종말론이 언급된다. 5절 끝의 은총으로 구원받았습니다.”에서 동사가 현재완료 시제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어에서 현재완료형은 과거에 실현된 사건의 효과가 지금도 미치고 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6절의 동사는 단순과거형이다. , 5-6에 의하면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구원과 부활과 천상 현양은 그리스도와 함께”,“그리스도 안에서이미 이루어진 현실이다. 그들은 지금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과 천상 영광에 동참하고 있다. 이 실현된 종말론은 콜로2.12에도 있다. 그러나 로마 6,3-11;8,11.17-18등에 의하면 에페2,5-6;콜로 2.12의 내용은 아직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

 

하늘에 함께 앉히셨습니다”;1,20;2.6에 의하면 교회는 이미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 위에 하늘 높이 앉아 있는 셈이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은총으로 구원받았습니다” ; 저자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혜에 감탄한다. 이 표현이 8절에도 반복되며, 7절에서도 은총의 풍요함에 대해 말한다. 8절의 믿음으로 말미암아하느님의 선물그리고 9절의 인간의 행위 나오는 것이 아니니는 모두 구원의 은총적 성격을 강조하는 5절의 은총으로 구원받았습니다를 보완설명하는 표현이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 “선행들”;바오로 친서들에서는 선행을 복수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들어올려지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을 가리킨다. 이 죽음이 모세의 구리뱀 사건과 비교된다. 이 비교점은 들어높이는 것. 구원의 힘.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을 들 수 있다.. 특히 들어 올려져야 한다에서 ”...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강조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사람의 아들이 들어올려지는 목적은 믿는 이 모두 그 안에서 얻을 영원한 생명이다. 이제 사람의 아들은 인간 구원의 중개자로 언급된다. 특히 사람의 아들 안에서란 말이 이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인간 구원의 확실성은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근거한다. ”영원한 생명은 요한복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유한 개념으로서 인간 구원을 가리킨다.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언급된 하느님의 나라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주로 종말론적 미래 의미로 언급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현재적 의미에 역점을 둔 미래지향적 개념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인간 구원의 복음이 요약된 구절이다.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상 죽음을 거쳐 영광스럽게 되는 길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한마디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의 진노가 머문 인간세계를 가리킨다. , 구원이 필요한 인간세계다.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은 사랑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외아들을 주심으로써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주실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아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났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이 무한한 사랑의 행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 외아들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생명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명이나 멸망이냐,”구원이냐 심판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음도 아울러 시사된다. ”생명이 현재적이듯이 멸망마찬가지다. 인간은 오로지 외아들믿음으로써 이 비권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세상에 아들을 파견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세상 구원에 있다. 이 목적은 또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나타낸다. 하느님은 오로지 세상 구원만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하느님은 심판을 원치 않으시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미 심판이 주어진다. 심판은 인간이 자초한 것으로 지금 이곳에서이루어진다. 종말론적 심판이 쉽게 이루어진다고 명언하는 이른바 현실화한 종말론에 속한다.

심판을 자초한 불신의 내용인즉, “세상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파견된 하느님의 외아들”(16)을 믿지 않음이다. 특히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으로써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구원의지 및 인간 구원의 유일무이한 가능성이 강조된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 “은 한 실체로서 세상에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둠은 악의 세력이 인격화했을 뿐이다. 심판은 보다 어둠을 좋아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수는 심판하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닌데(17), 심판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의 계시활동을 통해 심판도 사실상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을 거절하고 어둠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잘못이다.

 

 

보다 어둠을 사랑한 이유가 사람들이 악한 행실때문이라는 말도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따라서 심판은 항상 어디서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심판은 단죄나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 “어둠의 지배를 받는 지속적 상태를 가리킨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비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리적 설명이다. 계시의 빛이 믿지 않는 자들이 행실을 폭로하고 그들 자신의 실체까지 들추어내기 때문에 그들은 심리적으로 그 빛을 미워하게 되고 더욱 거절한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는 자기 잘못이나 죄를 명백히 드러낸 셈이 된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 믿는 자들에 대한 심리적 설명이다. 여기서 진리는 하느님께 속한 것을 총체적으로 뜻하는 개념으로서 악마로부터 나오는 거짓이나 악과 정반대다. 따라서 진리를 행하는 이”, 곧 진리를 말하는 분에게로 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자기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즉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여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행하는 이의 행실을 드러내려는데 역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는 앞에서 그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참된 것으로 보여질 뿐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빛안에서 새로운 근원을 얻게 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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