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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4.“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3 조회수2,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요한 3, 14-21(사순 4 주일)

 

오늘은 사순 4주일로, 기쁨주일니다.

우리는 오늘 <입당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으로 기뻐 뛰며 흡족해 하리라.”

 

그리고 <제1독서>에서 역대기 저자는 주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고 성전은 파괴되고 이방인의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 유배를 끝내주시는 기쁨을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실현한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실현한 부활을 함께 노래하며, 우리를 기쁨에로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에 관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말해줍니다.

흔히 말하는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 혹은 작은 복음서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이 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왜 오셨고, 무엇을 하셨는지를 한 마디로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는 이 한 마디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여기에는 바로 하느님의 외아들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 사명의 기원과 본질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천명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 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나,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말해줍니다(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사랑한 나머지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친다).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아먹은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셨다면, 굳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박이나 번개, 천재지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다름 아닌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세상과 모든 사람들은 거부하고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더구나 파괴해야 할 그 무엇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존중하고 수락해야 할 선물이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축복의 자리요 대상입니다.

그런데도 혹 우리는 세상을 마치 마귀처럼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미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속정신어둠입니다.

그것은 맘몬을 앞세우고 굴러가는 물신주의나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같은 것들 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복음정신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사는 이타적인 “사랑”이 세상을 성화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어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시고자 하시건만, ‘이미’ 심판을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까닭입니다’(요한 3,19 참조). 곧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이미’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

 

그렇습니다. 세상에 빛은 이미 왔고,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구원의 삶과 사랑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장님이 빛이 비추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이 감겨있어 빛을 보고 못한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피앗’의 응답이 구원을 불러옵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요한 3,21).

그러니 <시편>(36,11)의 말씀처럼, 빛으로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오면 어둠은 물려갈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어둠을 볼 수 있음은 이미 빛이 비추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둠인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둠을 바라보기보다 어둠을 비추어주는 빛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일입니다.

사실, 어둠은 어둠을 보며 어둠으로 이끌지만, 빛은 빛을 보며 빛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빛은 이미 세상에 왔고,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며, 기뻐합니다. 오늘도 하느님 사랑의 빛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운 하루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양손을 못에 내어주고 가슴을 열어 창을 받아들이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신 사랑의 멍에를 지고 거부되고 배척받을지라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이해받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사랑으로 질 줄을 알게 하소서.

약해져 꺾일 줄 알고, 낮아져 밟힐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눈감을 줄을 알고, 죄 없으면서도 뒤집어쓸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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