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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6 조회수1,551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은 도움이라는 걸 한번 묵상하고 싶습니다. 성전 주위에 병자들이 누워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치유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에 나오는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었던 사람을 한번 보시면 실제 이 사람이 치유가 되었지만 그것도 안식일에 치유가 되었습니다. 굳이 하필 안식일이 아니더라도 38년 동안이나 자신이 치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사람 말처럼 자기는 거동이 불편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속도가 느려서 벳자타 연못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항상 뒤쳐졌기에 자신의 병이 치유가 될 수가 없었다고 하는 말로 보면 그 세월 동안 누구 하나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위에는 많은 유다인들이 있었습니다.

 

다섯 개의 주랑은 모세오경을 상징하는 면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들이 안식일 규정을 언급하면서 말을 하는데 이를 토대로 본다면 이 사람들은 율법학자를 상징하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율법을 논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21세기 해설판 성경 참조) 법이라는 것은 지키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과연 율법 그 자체는 잘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실제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오늘 복음에서 보더라도 너무나도 율법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나 계명에서는 무엇보다도 이미 이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일 텐데 그들의 이웃사랑에 대해서는 낙제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보여집니다. 진정 율법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흔히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삶 따로 신앙 따로 따로국밥처럼 각각 따로 노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복음을 큰 틀 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당시 유대사회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던 것 같습니다. 율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걸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고 실천도 중요하지만 액면 그대로의 율법의 겉모습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실제 그 율법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뜻을 헤아려서 율법을 준수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인데 오히려 율법이 하나의 짐짝처럼 자신의 행동반경을 구속하는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시니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지금은 사순시기입니다. 회개의 삶이 무엇인지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누구나 회개와 성찰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창한 말처럼 여겨집니다. 원래는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도 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모습이니 마치 따로국밥처럼 신앙은 아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거창하게 회개라는 말을 언급할 필요 없이 그보다도 더 중요하고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도 잘하고는 있는지 그걸 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을 볼 필요도 없이 저만 봐도 하느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도덕적으로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앙적으로는 솔직히 개차반 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당 마당만 밟는 신자는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때로 성전에 앉아서 제대 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하면 예수님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는 걸 수차례 경험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자괴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괴감 때문에 무너지길 하느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늘 복음에 자신의 병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유가 되어 건강하게 되어 걷게 된 병자처럼 다시 용기와 힘을 내봐야겠습니다. 들것을 들고 가라고 하시는 말씀이 마치 제 십자가를 지고 걸으라는 말씀으로 들리는 듯합니다. 조금 흥미로운 것은 십자가를 지다에서 지다의 의미가 영어 성경을 보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들것을 들다의 들다의 의미와 같은 동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들것이 십자가로 연상이 되어 십자가로 묵상이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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