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지금이 바로 그때 (요한5,17-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7 조회수1,23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3월 17일 수요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지금이 바로 그때 (요한5,17-30)

  

 

1독서<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이사49,8-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10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11 나는 나의 모든 산들을 길로 만들고 큰길들은 돋우어 주리라.

12 보라이들이 먼 곳에서 온다보라이들이 북녘과 서녘에서 오며 또 시님족의 땅에서 온다.

13 하늘아환성을 올려라땅아기뻐 뛰어라산들아기뻐 소리쳐라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14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화답송 시편 145(144),8-9.13ㄷㄹ-14.17-18(◎ 8)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복음<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요한5,17-30)

17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49,8~15)


그런데 시온은 "주님꼐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14~15)

 

이사야서 47장 8~13절에서는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에 주님의 종 메시야를 통하여 선민들이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될 것이 예언되었다.

이제 이사야서 49장 14~26절까지는 바빌론 유배지에 있던 남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번성할 것을 예언한다. 

바빌론 유배지에 있던 남부 유다 백성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사야서 49장 14~26절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결코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답을 줌 동시에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에 그곳이 좁아서 못 살 정도로 인구가 많아지는 축복까지 누리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약속까지 한다. 

이사야서 49장 14절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라는 의심과 불평은 이사야서 40장 27절에서 나타나는 내용과 유사하다.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채 없어져 버린다."" (이사40,27)


이렇게 불평을 하는 대상으로 언급되는 '시온'은 바빌론 유배지에 있는 남부 유다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만을 볼 뿐 하느님의 약속을 망각했으며 하느님께서 주실 구원을 내다보는 믿음의 눈이 없는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나를 버리셨다'에 해당하는 '아자바니'(azabani)의 원형 '아자브'(azab)는 '무시하고 저버리다', '남겨두고 떠나다'라는 의미다 (창세28,15; 39,12; 50,8).

그리고 이와 병행을 이루는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라는 표현에서 '나를 잊으셨다'에 해당하는 '셰케하니'(shekehani)의 원형 '샤카'(shaka)는 인지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함과 더불어 무시하고 배신함 나타내는 표현이다(신명8,11.19).


이러한 이사야서 49장 14절의 표현은 바빌론 유배지 포로로 잡힌 이들의 하느님께 대한 불신앙을 보여준다. 

그들은 장차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계속된 포로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잊고 버리셨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주님과 주님과의 계약과 율법을 배신하고 무시하며 저버린 남부 유다 백성들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남부 유다 백성들을 결코 버리시거나 잊지 않으셨으며, 백성들의 불신앙 가운데서도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이사49,1~3).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반어적 수사 의문문으로 시작하는 이사야서 49장 15절은 주 하느님의 당신 백성들에게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강조하여 표현한다.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버리고 잊으셨다는 백성들의 의심과 불평에 대해 주 하느님께서는 자기 태에서 난 젖먹이를 키우는 여인의 비유를 들어서 당신 자신이 당신 백성들을 결코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 중 가장 숭고하며 강한 것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모성적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바로 어머니의 모성적 사랑을 소재로 하여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계신다.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본문은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문장이다. 사실 젖먹이를 잊고, 태에서 난 아기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 어머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확실한 사실이 부정될 수 있다고 해도 하느님의 사랑만큼은 결코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본절에 이어지는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원문상 이 문장에서 주 하느님 자신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즉 '나는'에 해당하는 '아노키'(anoki)는 문장 구성상 없어도 되는 단어이지만, 주어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인칭 대명사이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에 해당하는 '웨아노키 로 에쉬카헤크'(weanoki lo eshikaek)에서 드러나듯이 '에쉬카헤크'(will forget you)라는 미완료형 동사와 부정어 '로'(lo; not)가 결합된 형태로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 하느님 자신만큼은 절대로 당신 백성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일찌기 깨달은 다윗 시편 29장 10절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라' 하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하였다.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요한5,17~30)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28~29)


요한 복음 5장 28절의 '이 말에'로 번역된 '투토'(touto; this)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주시는 것(요한5,26)과 심판하는 권한을 가지신 것(요한5,27)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을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이해하거나 수용하기가 불가능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당신 자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주장이 어이없는 궤변으로 들렸던 것이다.


여기서 '놀라지'로 번역된 '타우마제테'(thaumazete; be amazed at; marvel at)는 '타우마조'(thaumazo)의 현재 명령형으로서, 부정어 '메'(me)와 함께 쓰여 금지를 나타낸다. 

'타우마조'(thaumazo)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기이히 여기다' '경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기적과 관련된 기사에서 많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놀라움을 드러낸다(마르5,20; 루카11,14). 

그러나 대다수 정통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주장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메 타우마제테'(me thaumazete)는 '의심하자 마라'는 말로 알아 들어도 된다.


이어서 요한 복음 5장 28절 이하에는 세상 끝날에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된다는 것과 그 부활이 두 가지 다른 양상, 즉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나타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 두가지 양상은 모두 하느님의 엄격하고 정의로운 보상의 원리에 기초한다.


요한 복음 5장 29절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단어는 원문에서 문장 앞 부분에 나오는 '(무덤에서)나와'로 번역된 '엑포류손타이'(ekporeusontai; come out; come forth)이다.

이 동사는 '엑포류오마이'(ekporeuomai)의 미래 시제인데, 기본적인 뜻은  '나가다' 혹은 '나오다'이며, 여기서는 그 목적지가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두 가지이다.


하느님의 자녀와 세상의 자녀의 구분없이, 또한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이 두 가지 양상의 부활 중에 하나에 참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미래 시제는 예언적이고 예고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예수님의 이러한 경고는 세상 끝날에 반드시 일어나게 될 일임을 드러낸다.


믿는 이들이 참여할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영원한 생명을 갖고 다시 살아나 영원토록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선(善)을 행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선'(善)에 해당하는 '타 아가타'(ta agatha; good)는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기초 위에서 행해진 모든 일들을 가리킨다.


반면에 이 세상의 자녀들이 참여할 부활은 '심판의 부활'인데, 이것은 그들이 악'(惡)에 해당하는 '타 파울라'(ta phaula; eveil)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악'(惡) 중에서 가장 큰 것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인생의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는 가치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느님 대전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