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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성경이 나를 증언한다. (요한5,31-4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8 조회수1,28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3월 18일 목요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성경이 나를 증언한다.(요한5,31-47)

2019.04.04. 사순 제4주간 목요일

 

1독서<주님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탈출32,7-14)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화답송 시편 106(105),19-20.21-22.23(◎ 4)

◎ 주님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백성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요한5,31-47)

31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2017년 3월 30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32,7-14)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9-10)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뻣뻣한'이라고 번역된 '케셰'(qesheh)는 아마 농경 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것은 '멍에를 지우는 데 대한 황소의 반항적인 반발'을 의미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는 '뻔뻔스럽고'(shameless), '오만(거만)한'(insolent), '완고한'(harden)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신명9,6; 2역대30,8; 느헤9,16; 사도7,51).

즉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센 모습이 마치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버티는 미련한 소와 같다는 말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나를 말리지 마라'로 번역된 '한니하 리'(hanniha li; leave me alone)에서 '한니하'(hanniha; '말리지 마라','하게 하라')의 원형은 '누아흐'(nuah)인데, '내려앉다','멈추어 서다'(민수10,36), '쉬다'(탈출20,11), '휴식을 취하다', '편안히 쉬다'(이사23,12)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편히 쉬게 하다','홀로 쉬게 하다'(이사28,12)라는 의미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된 것을 감안해서 '나를 홀로 있게 하여라'(let me alone)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절교선언(絶交宣言)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노예생활하던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켜 인도하시고 이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나,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완고하고 사악한 백성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제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내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창세12,2). 그런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이 아닌 모세에게 다시 주어지고 있다. 

모세에게 주신 이 약속은 단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계약의 상속자라는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주신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제2의 아브라함으로 삼아 그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5,31-47)

 

<증언이 있다>


오늘 복음에서 증언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증언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증명하는 말이다. 즉 내가 말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증언하기가 쉽지,  다른 사람을 증언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다른 이를 증언한다는 것은 그 만큼 그에 대해서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잘 모르면 증언할 수가 없다. 잘 모르면서도 증언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더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짓 증언을 할 때 증언을 한 사람이나 또 증언을 받은 사람이나 위증 죄의 처벌을 받는 법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많은 증언을 한다. 즉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를 설득시키려고 대화를 하고 협박까지 해가면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정당화시키고 합법화시키려고 많은 증언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기가 자신을 증언하는 것은 믿을만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를 증언한다고 할 때 거짓인데도 다 맞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불리할 때는 아니오, 유익할 때는 네 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신을 증언할 때에는 사실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익한가 불리한가에 따라서 말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에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이다. 서로 증언을 하기 위해서이다. 

 

증언은 반드시 다른 이가 해야 한다. 공평하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기 위해서 다른 이가 증언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른 이를 위해서 증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증언을 함으로써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게 될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다른 이를 위해서 증언한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관계이거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자신을 증언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라고 하신 그분은 누구인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즉 아버지가 아들을 증언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자기가 한 일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아버지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즉 아들은 항상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지 안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아버지이시고 그 일을 증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뿐이시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인간을 상대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주 외딴 곳에 가시어 기도하셨다.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신다는 것은 아버지와 대화하시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시는 것이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시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셨다면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일을 하실 수도 있으셨다.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사람들로부터 모함과 모욕을 당하셨어도 흔들림 없이 아버지의 일을 계속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증언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하시느냐가 문제이다. 

 

신앙 생활이란 무엇인가?  

인간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즉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우선 순위에 놓고 그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죽음의 위협을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에 우선 순위를 두고 그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때로는 자기 생명의 위험을 당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순교자들이 자기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그것과 다른 일을 강요당할 때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까지 아버지를 증언한 것이다. 오늘 아버지를 증언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상 것이 아니라, 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가 아니라, 아버지, 즉 진리를 증언하고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4-19)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조용한 곳에 가서, 즉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또는 나의 삶이 아버지를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우리 스스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기 위해 골방에 들어가 머물지 않을 수 없고, 인간 관계 때문에 속이 상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증언을 받을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나의 삶에 증언자가 되지 않으신다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고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예수님도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람이다, 일을 잘한다, 똑똑하다 등 그런 영광을 받는 삶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증언을 받는 삶이 신앙 생활이다. 

그런 참 신앙인을 하느님은 찾고 계신다. 정말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신앙인들 말이다.

 

 -   유광수 야고보 신부(전 성바오로수도회 관구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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