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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과 영광- 결단의 시간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0 조회수1,346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교회의 판단에 따라, 이 주일부터 성당에 있는 십자가와 성화상들을 가리는 관습을 보존할 수 있다.(한국 교구들에서는 이 관습을 보존한다.) 십자가는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거행을 마칠 때까지 가려 둔다. 성화상들은 파스카 성야 예식을 시작할 때까지 가려 둔다. 파스카 성야에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세례 준비로 셋째 수련식을 이 주일에 거행한다. 이 수련식에서는 고유 기도문과 고유 전구를 사용한다.

 

 

1독서

예레미야서의 말씀 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고 한다.

 

 

 

2독서(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다.)

히브리서의 말씀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이 구절은 언뜻 보면 게쎄마니 장면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휘는 오히려 탄원 시편에 가깝다. 이러한 배경들을 참고하면서 볼 때,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을 하시는 동안 사람으로서 온갖 고통과 번민을 겪으셨지만 그러한 이려움 중에도 하느님께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분의 간구와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증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직역하면 육의 날”. 그리스도는 연약한 사람으로서 지상 생활을 하셨다.

 

경외심은 존경심에서 우러나는 두려움이다.

 

고난을 통해 복종을 배운다는 가르침은 칠십인역의 지혜문학 성서에 가끔 발견되는 사상이다. 피로의 저서에서는 고난을 겪다배우다가 자주 함께 쓰일 뿐 아니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분의 절대적 순종의 결과이자 천상 영광의 바탕으로 믿고 고백했다.

완전하게 되다축성되다의 뜻도 포함한다. 여기서는 두 의미를 다 내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 순종하여 자신을 바침으로써 주님이자 영원한 대제관이 되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순종과 헌신을 통해 완전하게 되고 인간 구원의 원천이 되셨다. 사람들은 이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방법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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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2,20-33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 본절의 축제 때는 해방절을 가리킨다. (11.53;12.1 참조)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는 예루살렘 입성 때의 군중보다는 예수의 말을 가끔씩 이해하지 못한 유다인 군중을 가리킨다.

그리스 사람은 헬라어를 말하는 유다인이 아니라 태생 그리스인으로서 유다교로 전향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유다교의 유일신 신앙을 받아들여 안식일법과 음식규정등은 지켰으나 할례는 받지 않았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들을 경건한 자들이라 칭한다(10.2;13.43;17.4.17). 이들은 물론 유다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러 순례왔을 따름이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하고 청하였다.

-. 여기에서 선생님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반적 존칭이다.

예수 자신과 예수의 행적에 관해 이미 들었는데 예수를 좀더 알고 싶다는 뜻이다. 예수에게 직접 나서지 않고 필립보를 통한 것은 일종의 예의 표시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 열두 제자 가운데 이 두 제자만이 그리스어식 이름으로 표기되고, 또한 요한복음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닌 제자들로 보도된다. 아마도 이들은 특히 그리스계 사람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한 사도들이라 여겨진다. 이 두 제자의 역할만 서술된 것은 앞으로 있을 이방인 선교를 시사한 셈이다.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선포는 예수의 부활 후에 이루어졌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 “영광의 시간이 이미 와 있다는 뜻으로서, 예수의 죽음을 가리킨다. “사람의 아들이 들어올려진다는 의미도 함께 드러낸다. “영광들어올려짐은 예수의 죽음에 결속되며 동의적 개념이다. 예수는 천상세계로 올라가서 영광을 얻게 되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로 표현된다. 이 영광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충만된 능력을 시사한다. 예수의 죽음이 곧 영광이라는 말은 예수가 성부께로 돌아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들어올려진 자로서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결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비유다. 이 비유의 핵심은 선교의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 예수의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데 있다.

 

25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 예수 자신의 죽음에 직결된 말로서 제자들의 헌신도(죽음) 멸망이 아니라 참된 생명의 완성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제자들의 헌신이 예수 추종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뜻으로서 헌신의 동기가 명시된다. 예수를 섬기는 것이 곧 예수를 추종하는 것이며, 이 추종은 예수의 운명에 동참하는 죽음에까지 나아가는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 추종자들에 대한 두 약속이 언급된다. 하나는 내가 있는 곳즉 아버지의 영광이 있는 아들 예수의 참된 고향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곳은 죽음을 통해 이르게 되는 예수 추종의 목적지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의 영광에 참여토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들을 사랑한 자들을 사랑하시고 당신 자신과 아들의 완전한 일치 공동체로 받아들이신다는 뜻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27절은 죽음에 대한 예수의 공포와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예수의 모습이 보도된 이른바 게쎄마니 장면이 요약된 내용으로서 23절에 직결된다. 죽음과 영광의 시간이 예수에게 임박한 예수 자신의 시간에 대한 요한복음의 독특한 보도다. “산란하다라는 말은 예수 자신이 바로 이 시간을 마음속에 깊이 체험한다는 뜻이다. 공관복음과는 달리 죽음에 대한 공포만 강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적 번뇌와 투쟁이 시사된다.

 

예수의 시간은 어두운 죽음의 시간만이 아니라 영광의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면하게 해달라는 간청이라기보다 오히려 물음으로 볼 수 있다. 예수는 이 시간을 예견했고, 이 시간은 예수를 기다렸다. 역시 공관복음과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마르 14.35-36/참조).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하는 이들도 있었다.

-. 아버지로부터 제시된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순종의 뜻이 내포된 청원기도다.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는 아들의 모습. 곧 아버지와 일치된 아들의 모습이 시사된다. 아들 예수는 세상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계시함으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다. 예수의 그런 일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사본에는 당신의 이름대신 당신의 아들로 되어 있다.

 

소리가 들려왔다는 유다 묵시문학적 표현으로서 공관복음과 묵시록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직접 예수의 청원기도를 받아들이셨다는 확신을 묘사한다.

 

예수의 청원기도애 대한 아버지의 응답이다. 이 내용은 또한 요한복음의 이름바 영광 신학사상에 부합된다. 아버지와 아들은 언제나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광이 동시에 언제나 아들의 영광이다. 아들을 통해 드러난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로 인해 들어난 아들의 영광은 내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영광스럽게 했다란 말은 예수의 시간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의 지상활동 전체를 가리킨다.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말은 아들 예수를 다시 천상적 영광에 받아들이고 아들의 죽음이 인간세계에서 많은 결실을 엄음으로써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뜻한다.

 

군중(그리스계 사람들이 아니라 막연히 청중을 가리킨다)의 몰이해와 오해를 뜻한다. 계시사건에 대한 청중의 낯선 모습을 구약성서의 묵시문학적 표현으로 묘사한 것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 어떤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군중의 몰이해에 대한 예수의 입장표명이다.

청중에게 믿음을 촉구한 말로서 예수에 대한 하느님의 증언을 알아들으라는 뜻이다. “여러분을 위해서는 이 계시 사건이 청중을 위해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하늘의 소리는 청중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 예수의 시간과 관련된 종말론적 심판의 시간을 뜻한다. “이 세상은 어둠.거짓.죽음의 영역, 곧 믿음이 없는 세계를 가리킨다.

예수의 시간에 이루어질 보편적 구원사건이 언급된다. 예수가 십작가상 죽음을 거쳐 하느님의 세계로 들어올려짐으로써 이 세상 두목이 무력해지고 예수의 보편적 구원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땅에서부터 들어올려지다란 우선 십자가상 죽음을 뜻하고 이 십자가는 또한 예수의 영광. 곧 천상세계로 올라가는 그리스도론적 의미와 모든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론적 의미를 시사한다.

 

따라서 십자가상 죽음은 예수의 자기계시 사건으로서 예수 영광의 장소요, 모든 사람을 자신의 십자가와 천상세계로 이끄는 예수 구원통치의 시작이다. “내게로 이끌어 온다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예수의 십자가와 영광에로 이끈다는 뜻이다. 즉 예수 자신과의 결속관계를 뜻한다.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예수의 말씀을 더욱 명료하게 하고자 하는 저자의 설명이다. , 예수는 자신에게 곧 닥칠 죽음을 이미 알았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의 특성까지도 알았다는 것을 말하고 한다. 또한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을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보편적 의미로 독자들에게 재확인시키고 일깨우고자 했으리라 여겨진다(3.14;11.52;12.32 참조).

 

#. 오늘 복음은 예수의 마지막 공개적 자기계시다. 구조나 내용 면에서 니코데모와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니코데모처럼 그리스 사람들이 나타나 먼저 말을 걸고 예수의 계시적 말씀이 군중의 오해나 불신 가군데 단계적으로 전개된다. 주요 용어도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이끌어오겠다는 예수의 약속과 믿음을 촉구한 예수의 말이 핵심이다. 공관복음의 이른바 게쎄마니 전승이 예수 수난사가 아닌 예수 자기계시 대목에서 요약된 점도 독특하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 공생활 보도를 마무리지으면서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과 영광과 승리를 내다본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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