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2 조회수2,841 추천수8 반대(0)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문틀에 곧바로 서서 볼펜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서 문틀의 선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키가 컸기 때문입니다. 작은 형의 표시는 한 뼘은 높은데 있었습니다. 형제들 중에서 키가 컸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빛바랜 선들이 기억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지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건강 검진을 통해서 몸무게, 체지방, 혈당, 간수치, 지방간, 청력, 안압과 같은 지표를 살피게 됩니다.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몸의 다른 부분들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운동, 규칙적인 식사, 긍정적인 생각,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지는 사람의 건강지표는 파란 불일 겁니다. 반면에 과도한 스트레스, 지나친 음주와 흡연, 불안과 불면의 날을 보내는 사람의 건강지표는 빨간 불일 겁니다. 지난 1년은 코로나19로 많은 분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백신이 나왔으니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학교의 긴 담에 국민소득 1,000, 수출 100억불이라는 표어가 신동우 화백의 그림과 함께 있었습니다.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에는 경제성장의 지표가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가발을 수출하고, 월남전에 파병하고,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가 가고, 중동으로 근로자들이 갔습니다. 지금은 학교의 담벼락에 경제지표를 표어로 그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경제지표는 더 이상 전 국민이 알아야 할 사항이 아닙니다. 이제 다른 지표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합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을 통해서 건강을 지켜나갑니다. 검표원이 없어도 기차를 탑니다.

 

복지, 신뢰, 교육, 문화와 예술의 지표를 생각합니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이 많아지는 나라가 됩니다. 빈부의 격차가 큰 나라는 경제지표가 높아도 코로나19의 파도를 쉽게 넘지 못하였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적은 나라는 경제지표가 높지 않아도 코로나19의 파도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큰 나라는 우울증, 중독, 자살, 범죄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적은 나라는 우울증, 중독, 자살, 범죄의 비율이 낮았습니다. 미국의 아메리카 드림은 빈부의 격차가 적고, 중산층이 많았을 때라고 합니다.

 

신앙의 지표를 생각해 봅니다. 성당, 신자 수, 헌금과 교무금, 사제와 수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단체와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교계제도와 교리가 있어야 합니다. 8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이 있었습니다. 많은 본당이 신설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10년마다 100만 명의 신자가 늘었습니다. 70년대에 100만 명이었던 신자는 20205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의 수도 늘었습니다. 이렇게 외적인 지표는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지표는 박해시대를 견뎌왔던 70년대 보다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신앙생활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교회의 전례를 지키기보다는 여행과 여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집니다. 성적이 오르면,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하면 신앙생활은 나중에 해도 좋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는 가지는 말라서 생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코로나19를 지내면서 신앙의 지표를 돌아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서필사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고, 영상을 통해서 영성강의를 듣습니다. 위기는 위험은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라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지표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나의 형제요, 부모입니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나의 형제요, 부모입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우리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 양 만큼 소중합니다.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기본 정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전율이 일어납니다. 혁신과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사람의 아들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희생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였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보았습니다. 가야할 길을 알고, 충실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새로 창조될 백성이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이 드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리니, 포로의 신음을 들으시고, 죽음에 붙여진 이들을 풀어 주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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