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4 조회수1,808 추천수3 반대(1) 신고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한 여인에게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을 알려주게 됩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지 하고 놀랍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거나 몹시 당황스러워하셨을 겁니다.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그게 무슨 말씀인지 하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 뜻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며 헤아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단 안심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아서 일어날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성모님의 입장이 된다면 가브리엘 천사의 말이 납득이 가겠습니까? 총애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축복이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총애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영적으로는 축복이 될 일일는지는 모르지만 땅을 딛고 사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의 가시밭길과 같은 길이 눈앞에 펼쳐질 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묵상을 한번 해봤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이 일을 바라볼 게 아니라 2000년 전의 시간에서 한번 바라보고 싶습니다. 사람이신 성모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축복과 총애라고 먼저 인식되지 않으셨을 겁니다. 복음에 나오는 대로 몹시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놀라워하셨다는 말씀이 어떤 뜻을 내포할 거라고는 어느 정도 추측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만약 그게 하느님의 총애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세상에서 그걸 쉽게 인정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성모님께서는 그런 일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나의 십자가처럼 여겨질 수가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런 일을 거부하고 싶은 하나의 큰 십자가처럼 보여지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엄청난 축복일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잉태로 앞으로 험난한 길이 펼쳐질 걸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서겠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세상에 탄생하게 해드리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가시밭길을 이겨내실 힘이 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한다고 해도 그 어린 처녀에게는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지금 현 시점에서 다시 이 일을 한번 바라보겠습니다. 결론은 어떤가요? 하느님으로부터 천상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입는 영예를 입으셨습니다. 엄청난 영광입니다. 고통의 십자가처럼 여겨질 수 있던 게 영광의 십자가로 변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게 십자가였든 십자가가 아니였든 천사의 말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두려워서 할 수가 없었던 일이지만, 아들이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게 될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말씀의 순종이 가져다주는 축복입니다. 친척 엘리사벳 언니의 임신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 늙은 나이에도 임신하였다는 사실에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했을 때 최종적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고 결심을 하시게 됩니다. 그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성모님 자신을 통해 기꺼이 그 말씀이 이루어지시길 바란다는 말씀은 십자가를 흔쾌히 받아들이시여 그걸 성모님, 당신의 십자가로 지고 가시겠다고 하는 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그 당시 성모님의 연령은 20세도 채 되지 않으신 연령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그와 같은 믿음을 어떻게 가지시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에서 성모님의 믿음이 대단하고만 인식할 게 아니라, 그와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떤 한 순간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겁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을 선택하게된 것도 하느님께서 이미 예비하셨을 겁니다. 그 배경에는 성모님의 믿음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결국 하느님은 성모님을 선택하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은총과 은혜도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고 자기가 그런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가 되어야만이 은총이 주어져도 받을 수가 있지 그렇지 못하면 그릇이 없기 때문에 담을 수가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의 그릇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좀 더 달리 표현을 하면 십자가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믿음의 크기와 비례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십자가도 은총이 된다는 생각과 그런 은총도 그냥은 받을 수가 없고 이미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을 때만이 하느님의 은총도 누릴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