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7 조회수2,353 추천수10 반대(0)

메뚜기와 황충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메뚜기는 우리가 논이나 숲에서 볼 수 있는 곤충입니다. 다리가 길고, 예쁜 곤충입니다. 메뚜기는 몰려다니지 않으며 우아하게 혼자서 다니는 곤충입니다. 누구도 메뚜기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도 어릴 때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황충은 다리가 짧고, 색이 어두운 곤충입니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한 번에 수백억 마리씩 때지어 다닙니다. 황충은 왕성한 식성으로 닥치는 대로 곡식을 먹어치웁니다. 황충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됩니다. 성서에도 황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발생하는 황충은 지금도 많은 피해를 줍니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메뚜기와 황충은 유전적으로 똑같다고 합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메뚜기가 어느 순간 황충이 된다고 합니다. 모든 메뚜기가 황충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든 황충은 한 때는 메뚜기였다고 합니다. 환경의 변화와 그로인한 밀도의 증가는 온순한 메뚜기를 난폭한 황충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배반한 두 명의 제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명은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신뢰하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의 재정을 담당했습니다. 유다의 배반을 보면서 배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구청에서 일할 때입니다. 가끔씩 본당에서 본당 신부님에 대한 비난을 담은 투서를 보내곤 합니다. 투서를 보내는 사람은 대부분 한때는 본당 신부님과 친했던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본당 신부님에 대해서 좋은 점, 나쁜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의 절대 권력자였던 줄리어스 시저는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가장 총애하였던 브루투스마저 시저를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배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런 사람이 배반하였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배반은 커다란 상처로 남습니다. 요즘은 회사의 기밀을 경쟁 회사에 팔아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배반은 욕심과 욕망에서 시작됩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물과 성공을 주는 나라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다른 한 명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하였던 베드로입니다. 죽을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뢰하였던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고,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도, 죽은 소녀를 고쳐주실 때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실 때도 베드로는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올해는 한국의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순교함으로써 신앙을 지켰습니다. 감옥에서도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였고, 교우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올해 사제서품 30년이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200년 전에 태어나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처럼 한국의 첫 번째 사제가 되었다면, 저도 박해와 시련 앞에 당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꺼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순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 사도를 비난할 용기가 없습니다.

 

주님 수난의 길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발을 씻어드린 마리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한 백인대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고, 장례를 지낸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있습니다. 숨어버린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곁에서 함께 있었던 여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1997IMF 때입니다. 본의 아니게 저도 형님을 대신해서 부모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형님의 사업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24년이 지났습니다. 덕분에 부모님과 가까이 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형님이 하였던 일을 나누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조카들도 모두 취직하였고, 가족들의 우애는 더 깊어졌습니다. 주변을 보면 타인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회의 전승은 예수님의 피와 땀을 닦아 드린 베로니카 성녀를 이야기합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비가 엄청 오는 날 성당에 오셔서 문들을 점검하고, 하수구의 오물을 치우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형제님이 생각납니다. 본당 신부가 피정을 가면, 늘 성당에 오셔서 성당 문을 열고, 수녀님을 도와주시던 형제님도 생각납니다.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명절이면 떡을 드리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던 자매님도 생각납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처럼 본당의 일에 도움을 주었고, 협조하였으며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