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28.“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8 조회수1,535 추천수3 반대(0) 신고

 

마르 14, 1-15, 47(성지수난주일)

 

부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 <전례>는 기쁨과 슬픔이 혼합되어 교차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호산나하고 환호하는 군중에 둘러싸여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기쁨에 충만해 있는 반면, 그 환호는 일시에 지나가고 수난과 죽음을 향하고 있는 비탄이 젖어듭니다.

이제 환영과 환호의 행렬은 배척과 조롱의 십자가 행렬이 되고, 축복의 성지가지는 저주의 채찍이 됩니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던 이들이 예수님의 속옷마저 벗겨가고, 나귀위에 오르셨던 그분은 십자가 위에 달리십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왕으로 성 안으로 모셔진 그분은 강도와 함께 성 밖에서 처형됩니다.

그래서 <성주간>이 시작되는 오늘은 두 개의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주님성지주일>이면서, 동시에 <주님수난주일>이라 불립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언자 이사야가 노래하는 “야훼의 종의 셋째노래”의 일부를 들려줍니다.

이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뺨을 내맡기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 <주님수난주일>의 특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오늘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리스도 찬가”를 들려줍니다.

이는 “예수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주님성지주일>의 특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가 전한 예수님의 수난기”를 들려줍니다.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1,1)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수께서는 공생활을 통해서 당신의 신분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악령들이 예수님의 신비의 일면을 알아챘을 때마저도(1,34;3,12), 당신의 변모를 체험한 제자들에게마저도(9,9)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곧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신비에 가려졌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들은 예수님의 수난기에서는 메시아 비밀이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고 감독한 백인대장의 고백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르 15,39)

 

대체 백인대장은 이 나약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바보같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아들”을 보는 걸까?

사실 마르코복음사가는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마르 15,37)고 말한 다음, “그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마르 15,38)고 덧붙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분의 신비의 베일을 “찢고서” 그 내부를 열어 보임으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수난의 극적인 사건은 어떤 발견(깨달음)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에 젖어듭니다.

결국, <마르코복음>의 전체 줄거리는 바로 이 발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곧 침묵으로 가려져 있던 메시아의 비밀이 십자가에서 발견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당신을 메시아로,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곧 당신의 신적 비밀을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나약함의 행위, 바로 그 ‘죽음’이라는 ‘침묵’ 속에서 드러납니다. 바로 이때가 백인대장에 의해 “하느님의 아들” 이라 고백된 때입니다.

십자가의 이 무력함과 침묵이야말로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요,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이제 이 무력함과 침묵이 말씀의 ‘권능’으로 바뀌고, 어둠 가운데서 빛과 사랑의 무한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침내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비로소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순교당한 안티오키아(35년경~107년경)의 주교 이냐시우스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실 되게 지니고 있는 이는 그분의 침묵까지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침묵 속에 완성되어 있는 말한 대로 행할 수 있으며,

침묵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됩니다.”(에페소인에게 15,2)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침묵 속에 완성되어 있는 그분의 사랑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사랑이 완성되어 있는 장소가 됩니다.

십자가는 침묵 속에 있지만, 침묵보다 더 강렬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사랑이 구원이라고!!!

이 신비는 우리를 현실 앞에 내세웁니다.

오늘 우리가 다른 이들 앞에서 사랑으로 자신의 훼손을 받아들이라고!!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라고!!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

 

주님!

제가 산산조각 났을 때

저보다 먼저 산산이 부서진 이는 당신이십니다.

저를 풍기박살 낸 이도 바로 당신이십니다.

그래야만 온 몸을 쪼개고 피 흘리신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당신처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먼저, 부서지고 찢어져 피 흘리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