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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1.“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31 조회수1,981 추천수3 반대(0) 신고

 

마태 26, 14-25(성주간 수)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은전 30냥에 팔려 배신당하는 예수님을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배신자에게 마지막까지 인정을 베푸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유다야, 네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1)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마지막까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라고 묻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도 묻지만, 그는 “주님”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5)라고 묻습니다. 그가 올리브동산으로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마태 26,50)하고 여전히 그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사랑을 끝까지 외면하고 맙니다. 그는 뒤늦게 후회는 했지만, 결국 자책과 죄책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

 

그것은 단순히 은전 30냥에 대한 탐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님이 먼저 유다를 배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유다가 바라고 원했던 정치적 민족적 메시아가 되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먼저 유다의 이상을 배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그릇된 관념, 곧 선입감과 고정관념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고집한 까닭입니다. 완고함이란 이처럼 무섭습니다. 곧 자신의 피조물인 자신의 관념을 믿고 섬긴 우상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 이상을 파괴시키는 혁명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진정한 혁명가는 자신이 먼저 혁명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혁명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상을 쫒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마태 26,24)

 

이 말씀은 비단 유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라고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제가 유다처럼, 배신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당신을 배신하는 줄을 알면서도 악에 조정당하고 있고, 오늘도 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건져주십시오.”라고 자비를 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

 

주님!

더 이상 고집 부리지 않게 하소서.

생각을 움켜잡기보다, 생각에 붙잡히기보다, 생각을 바꿀 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조정 당하게 하소서.

저의 바람이 아니라, 당신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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