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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대축일: 과연 나는 부활했는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04 조회수1,275 추천수1 반대(0) 신고

 

새롭게 다시 우린 태어났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실제 느끼시는지요? 저는 오늘 복음 묵상을 하면서 과연 우린 전례적으로는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경축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도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어쩌면 이 날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절제를 하고 단식도 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과연 부활했는지 자문해 봅니다. 개종 후 열 번째 맞는 부활입니다. 오늘 저는 형식상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날인데 다른 분은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영혼은 지금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전례를 같이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하느님을 경배하는 예식 하나만큼을 절대 개신교가 따라올 수 없다는 걸 항상 느끼지만 오늘은 그렇게 느끼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씁쓸한 걸 느낍니다. 이건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외형적인 모습에는 단연 제가 봐도 주님이 부활하시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분위기임에는 확실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리 주님이 부활하셔도 자기가 부활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어김없이 사순시기가 오고 또 부활을 맞이하는 전례가 거행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다시 월요일부터 교회의 전례를 따라가면서 다시 저만의 사순을 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해서 부활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때 죽음은 진정한 죽음입니다. 진짜 죽지 않으면서 부활했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생각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처럼 과연 진정으로 자신을 죽이고 짓이겼는가 하고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한다면 죽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 본성이 죽지 않는 한 절대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저는 오늘 깨달았습니다. 수요일에 저는 개인적으로 로마에서 영성심리학을 공부하신 수녀님을 대전에서 만나 뵈었습니다. 수녀님의 개인적인 인적 사항은 밝힐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 이 수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이번에 어떻게 기회가 돼 만나 뵈었습니다. 상담 내용은 밝힐 수가 없지만 이번에 수녀님을 만난 후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다섯 시간 정도 수녀님과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마지막 두 시간은 수녀님으로부터 제가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일종의 신앙 강의를 들었습니다. 원래 독일에서 이미 개신교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신 분이였습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영성 심리학을 공부하셨는데 그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날 저한테 두 시간 동안 알려주신 내용이 수녀님이 로마에서 10년 동안 죽어라고 공부한 내용의 결과물이라고 하셨습니다.

 

한국에 되돌아오셨을 때 이걸 깨달으려고 그렇게 공부를 했던가 하고 어떨 경우는 허탈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허탈해서 허탈한 게 아니고 예를 들면 저만 보더라도 수녀님은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해 알게 된 신앙의 지식이라면 지식인데 저는 그냥 두 시간 정도 걸려서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수녀님께서도 누가 이런 걸 알려줬다면 지금 수녀님의 인생에서 수녀님의 신앙이 어떻게 더 업그레이드 됐을지 모를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공개를 하는 것은 민감한 내용이고 해서 공개를 할 수가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을 알려드릴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근데 그게 엄청난 진리입니다. 수녀님이 이야기를 해 주실 때 전부 다 성경 속에서 답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강의를 마치면서 물론 제가 그냥 강의라고 표현했습니다. 지혜서의 한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은 기간도 중요한 게 아니고 또 수많은 기도도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오늘 성야 미사를 가기 전에 지혜서 전체를 다시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오늘 성야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온 후에 수녀님과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서 부활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미사 때 신부님께서 말씀을 하셨고 부활을 축하한다고 하셨는데 과연 정말 영적으로 예수님처럼 부활한 모습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수녀님 말씀에 비추어보면 아니오가 답이었습니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 원장 신부님께서 말씀도 하신 적이 있지만 실제 하느님을 평생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외국에서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고 또 한국에 오셔서 다양한 사람을 경험하신 걸 토대로 봤을 때 실제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서 하느님을 찾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근본 정체성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수녀님이 저에게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님, 신앙생활을 거창하게 하려고도 또 사람들 관심을 끌려고도 하지 말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하는 아주 기본적인 덕을 실천하는 게 즉, 다시 말해 사랑을 실천하는 게 수많은 기도와 선행도 좋지만 그런 바탕 위에 있지 않으면 그런 선행도 자기만족이지 하느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그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어떤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성경학자와 신학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비결을 알고 있는 게 아니고 실제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할 정도로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담는 사람이지 머리에 담는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바리사이처럼 잘해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건 힘들지만 그 빈도가 너무나 차이가 난다면 그 또한 하느님을 기만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사람들은 하느님을 자주 기만하면서 사랑한다고 늘 입에 달고 있고 또 고백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말씀이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 운전을 할 상태가 아니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갔다 왔습니다만 마산으로 돌아오면서 많을 걸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 맨 마지막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짜 하느님을 제대로 믿기는 믿는지 생각해보면 수녀님을 만나고 와서는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외국 신부님이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을 기만하면서 하느님을 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과도 어쩌면 같은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하느님 앞에 갔을 때 이런 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하느님을 농락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과연 하느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있을지 상상만 해도 무섭기까지 합니다. 정말 외국 신부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을 늘 기만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과연 이렇게 해가지고 오늘 부활했다고 자축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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