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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부활, 만화 사진 한 컷을 보며 화요일 복음을 묵상해봤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05 조회수1,104 추천수2 반대(0) 신고

 

한 시간 전에 화요일 독서와 복음을 읽으면서 묵상을 하는데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걸 보내 주신 적이 없는데 이번에 교구청 바오로 서원에 계시는 한 자매님이 예수님께서 동굴에서 깜짝 나와 출현하시는 재미있는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처음엔 스틸사진으로만 생각했고 또 작아서 잘 몰랐는데 클릭을 하니 들고 있는 게 촛불이 아니고 스마트폰이고 촛불의 불빛인 줄 알았는데 스마트폰 불빛이어서 순간 빵터졌습니다.

 

동굴 밖에는 다섯 사람이 있는데 네 명은 예수님 사진을 찍고 있고 한 명은 스마트폰을 보느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예수님을 보려고 하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 재미있는 건 다섯 사람이 마치 스님들 가사를 두른 모습처럼 보입니다. 색깔을 다른 걸로 했으면 모르는데 가사 복장의 색깔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여집니다. 이 만화를 보고 순간 만화지만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웃음을 주는 사진이지만 뭔가 풍자를 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물론 이 만화를 그린 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일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코 박고 폰을 보는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 부활은 예수님 부활이고 나한테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 일에만 탐닉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만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은 성당 성전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이 사람은 미사에 오긴 왔습니다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만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미사에 참례해도 진짜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부활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게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신자이고 하니 참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규정 때문에 마지못해 참례해야 해서 참례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꼭 그런 사람을 풍자한 만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요일 복음을 보면 이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 바이블을 참조하면 미세한 차이를 하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그냥 오늘 복음이 따로 묘사가 된 것처럼 보여져 맥락이 끊어진 것처럼 묘사가 됐습니다. 사실은 장이 바뀌어서 그렇지 연결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요한과 베드로도 동굴에 가서 예수님 부활 현장을 목격하긴 했지만 반신반의 했는지 믿긴 믿었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확신까지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미스테리하다고만 생각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근거로서는 이 앞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리라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는 요한복음사가가 한 말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 저자마다 이 부분도 다 다르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만화에 나오는 한 사람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막달레나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마리아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희망이 과연 어떤 희망인지 묵상해봤습니다. 두 제자는 미스테리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실제 부활하셨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마치 월요일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수석사제들이 경비병을 매수해서 모의를 벌이는 모습처럼 그냥 누군가가 예수님을 모셔갔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정도의 생각에만 머물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슬퍼하면서 또 다시 안을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련이라고 보기보다는 실낱같은 희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희망도 희망이지만 이 희망은 조금 희박한 희망 같고 단순히 죽으신 모습을 가진 예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 자체를 보고 싶은 희망이 더 앞섰을 것 같습니다. 그런 희망과 간절함이 눈물로 나왔던 것입니다. 실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 옆에 계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화요일 복음만 놓고 보면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수님에 대한 간절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함이 예수님을 뵐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나의 지금 신앙이 만화 속 스마트폰에 눈을 파묻는 모습이 나의 모습인지, 마리아처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인지, 다시 한 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리아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할 텐데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모습을 생각해봤습니다. 전례에 충실히 참례한다고 해도 그게 하나의 형식에 지나치면 만화에 나오는 스마트폰에 빠진 그 사람이 저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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