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여인아, 왜 우느냐? (요한20,11-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06 조회수1,49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46일 화요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여인아, 왜 우느냐? (요한20,11-18)

 

제1독서<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사도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화답송 시편 33(32),4-5.18-19.20과 22(◎ 5ㄴ 참조)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알렐루야.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

 

복음<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20,11-18)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제1독서(사도2,36-41)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향한, 하느님의 신앙을 가진 신앙 공동체임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매우 강조적인 표현이다. 베드로의 설교의 종결부인 본절에서 메시아를 죽인 이스라엘 민족을 '이스라엘 온 집안'으로 표현한 것은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신앙 공동체라면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주님'에 해당하는 '퀴리오스'(kyrios)는 '주인'이란 뜻으로, 히브리어로는 '아돈'(adon)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용어이기도하다(사도1,6). 본문에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주 하느님을 향해서 사용하던 의미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재자라는 뜻이다(창세15,8; 9,26). 

그리고 '그리스도'(christos; 크리스토스) '기름을 붓다'라는 뜻의 '크리오'(chrio)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기름부음 받은 자'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mashiah; 마쉬아르)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7) 

 

'꿰찔리듯 아파하며' 해당하는 '카테뉘게산'(katenigesan)은 '찌르다','찔러 관통하다' 의미를 지닌 동사 '카타닛소'(katanisso)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그들이 찔려 관통함을 받았다' 뜻이다. 여기서 수동태는 신적(神的)수동태 볼 수 있는데 이때 하느님의 강력한 역사(役事)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강한 회개의 마음을 불어넣어 주셨던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또한 하느님의 회개의 영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대망하였던 메시아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회개의 역사가 일시에 강력하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걷잡을 수 없는 후회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마치 그들의 마음이 창에 찔리듯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것이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8)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자신의 죄로인해 마음의 찔림을 받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삶의 방법을 묻는 청중들에게 베드로가 요구한 첫번째 것은 바로 회개였다. 

'회개하다'는 의미의 원어 '메타노에오'(metanoeo)는 '바꾸다'라는 의미의 단어 '메타'(meta)와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단어 '노에오'(noeo)의 합성어로서 '바꾸어 생각하다' 또는 '마음을 바꾸다' 라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죄와 불신에서 떠나 그리스도를 향하여 인격적인 믿음을 갖게 되어 영적 순결과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마음의 변화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도행전은 다른 어떤 책들 보다도 이런 의미의 회개를 강조하였다(사도3,19; 5,31; 8,22; 11,18등등)

이 시대의 교회는 회개를 통한 교회의 성장이라는 사도행전적인 쇄신의 모델을 잊지 말아야 한다(41-46절)

 

베드로는 설교를 듣고 마음의 찔림을 받은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데 이어서 세례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세례는 죄사함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써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신앙 고백적 의식이므로 죄에서 떠나 구원받기 원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이것이 요구된다. 

 

'용서받으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페신'(apesin)의 원형 '아페시스'(apesis)는 '해방'과 '용서'(사함)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사함(죄의 용서)은 죄와 그 죄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히 자유롭게 하는 강력한 효과를 갖게 된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것이 이런 사죄(죄의 용서; 죄 사함)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에서 인과 접속사 '그러면'(그러하면)으로 시작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야만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리하면'으로 번역된 '카이'(kai)는 인과 접속사가 아니라 등위 접속사로서 '그리고'(and)라는 뜻이다.

따라서 원문대로 하면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면 그 결과로 성령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개하여 세례를 받으며 죄사함을 얻으라' 란 명령형과 장차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병렬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사도행전 8장16절에 의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베드로가 안수할 때까지 성령을 받지 못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령 받음이 기계적 인과 관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4-48절에 의하면 고르넬리오 가족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에 이미 성령을 받았고, 성령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것 역시 회개와 세례 및 죄의 용서가 성령을 받게 하는 원인 및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 보여준다.

이것은 각기 개별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난 뒤 성령을 받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실제로 각각 따로 따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는 한꺼번에 이루어질 경우도 있다.

어쨌든 여기 사도행전에서 말하는'성령'은  입문성사로서의 세례와 견진 성사때에 받는 성령이 아니라 요사이 말하는 '거듭남'의 '성령',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신앙으로 인도하는'성령', 소위 성령 세미나에서 말하는 성령에 대한 가르침의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볼 수 있다.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면 안됩니다.

제1독서(사도 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 우리의 메시아, 그 예수님을~ 육의 뜻을 위한, 그 열심을 지키기 위해 죽인 것입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 말씀이 선포되면 마음이 찔려 아픔니다. 말씀이 하시는 일입니다.

 

(히브4,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시메온의 예언입니다.~

(루가2,34-35)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마음이, 영혼이 꿰 찔리듯 아파하는 것, 축복입니다. 그 아픔이 회개로 이끌어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신앙은 죄가 드러나는 아픔에서 출발합니다. 아담, 다윗, 바오로, 베드로 등 모든 신앙인들이 그길을 걸었습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 회개(메타노이아)-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 죄를 반성하는 그 차원과 다른 것입니다.

에덴의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진리의 하느님 말씀을~사람의 눈으로 보고, 그래서 육의 욕망을 위한 선악의 계명으로 받아 사람의 일로, 길로 열심히 걸었던 그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그 잘 못간 길에서 돌아서서 죄를 덮어 용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실 ‘성령을 받아라’ 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 뱀의 유혹으로 거짓 가르침의 타락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1요한4,1)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에페5,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 하느님의 뜻을 위한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지, 사람의 뜻을 위한 길을 걷고 있는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다른(마태20,28) 열심히 시중드는 그 섬김에 바쁜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하신 말씀을 깨닫기 위한 올바름의 시간을 쓰고 있는지(루가10,38-42), 잘 분별해야 할 때입니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의 말을 부인하는 버림, 죽음을 뜻합니다. 그 죽음의 세례입니다. 육 이 죽어 하늘의 생명을 얻는 세례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손수 쓰신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시던 때, 땅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느님으로 섬기는 그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탈출32,28) 레위의 자손들은 모세가 분부한 그대로 하였다. 그날 백성 가운데에서 삼천 명가량이나 쓰러졌다.

= 오늘, 그 죽음에 길에서 돌아와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삼천명이 살아난 것입니다.(사도행전 2,41)

 

오늘 복음입니다,~

(요한 20,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요한14,18. 26)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 모든 것을 깨닫도록, 곧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 자유하게 하실 성령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제 묵상했듯이 예수님께서 하신 치유, 기적 등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표징 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실 성령 이십니다. 그 성령이 내 안에 사셔야 합니다.

 

(로마8,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1고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말씀으로 드러난 나의 더러운 죄를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그 죄가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졌음을 믿고, 이웃과 나누며 감사하며 사는 것, 그래서 이웃을, 다른 이를 판단하지 않는 것, 우리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아멘,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복음 (요한20,11-18)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7)

 

'나를 붙들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무 합투'(me mu haptu)에서 '붙들지'에 해당하는 '합투'(haptu)는 현재 명령형이고, '메'(me)라는 부정어가 사용되어서 현재 이미 진행되고 있는 행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합투'(haptu)의 원형 '합토마이'(haptomai)는 '비끄러 매다', 즉 서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매다라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계속해서 강하게 붙들고 있는 마리아에게 이제 그만 놓을 것을 명령한 것이다. 아마도 부활하기 전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뒤의 예수님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마리아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 것이다. 

당시 마리아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꼭 붙들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만져 질 수 있는 상태에서 만져볼 수 없는 상태로 바뀌어야 했다.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과 계속해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승천하셔서(사도1,9)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야 했기 때문에, 계속 육신을 지닌 채 머물 것을  강요하는 듯한 마리아의 행동을 자제시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당신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그리고 그들이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를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며, 나머지 사명들을 그들에게 위임하신 후에 아버지께로 가실 것이라는 사실과 가신 후에는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점진적으로 깨달아 갔다.  특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라는 구원사적 계시를 깨닫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예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이 요한복음 20장 11~18절에서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것이다. 

첫번째 부활에 대한 깨달음은 16절에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는 부름에 의해서, 두번째 승천에 대한 깨달음은 17절에서 '나를 붙들지 마라'는 교훈에 의해서 암시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을 말씀을 통해 조금씩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자신의 영적인 귀를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방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진보는 없다(묵시2,7). 

한편, '올라간다'에 해당하는 '아나베베카'(anabebeka)는 '아나바이노'(anabaino)의 완료형 동사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강조함으로써, 이렇게 당신이 마리아와 머물러 있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본문은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의 사명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께서 부활과 승천을 서로 단절된 별개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구원 사업의 연속선상에서 당신 자신이 이루어야 할 구원사업의 마지막 마무리로 보고 계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아나바이노'(anabaino)가 미래형이 아니고 현재형으로  기록된 사실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승천할 것이라는 것이 아니고  지금 승천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이며, 이 사실을 망각하고 당신 자신을 이 땅에 계속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17절의 마지막 문장은 '(너는)가서 ~전하라' ('포류우 ~에이페'; poreuu~eipe ; go~say) 라는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부활하심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얼마있지 않아 승천해야 할 예수님을 붙들고만 있는 마리아에게 지금 바로 그녀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예수님 공생활 초기를 묘사하고 있는 요한 복음 1장 39절의 '와서 보시오'(come and see)라는 명령과 서로 대구를 이룬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사업은 '데리고 와서 보여 주는 일'로 시작되었고, '내보내서 전하게 만드는 일'로 마친다고 볼 수 있다(요한20,21).  

우리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보고 들은 것으로 자족하지 말고, 그것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사도1,8).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