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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06 조회수1,622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1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음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8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도행전 주해

1

유다인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낮을 열둘로 나누고 해뜬 뒤 한 시간이 지난 때를 첫째 시라고 불렀다. 원문의 아홉째 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세 시.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오후에 정기적인 제사를 드렸는데 오후 제사는 세 시경에 드렸다.

 

2

아름다운 문의 위치는 정확히 밝힐 수 없다. 그런 문 이름이 여기말고는 전해오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아름다운 문은 니카노르 문과 같다고 본다. 그런데 니카노르 문의 위치 또한 불분명하다. 이 문은 여자들의 뜰과 남자들의 뜰 사이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나 솔로몬 행각에서 여자들의 뜰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선은 마태 6,2.3.4말고는 신약성서를 통틀어 오직 루카만이 열 번 사용하는 낱말이다.

루카는 자선을 매우 강조했다.

 

6

은과 금은 은화와 금화, 곧 돈을 가리킨다. 사도들은 앉은뱅이에게 돈을 주는 대신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부활하여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치유의 은혜를 베풀었다. 부활하신 예수께 대한 믿음이야말로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사유재산 대신 공유하고 있던 절대적 가치였다. “일어나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으나 시나이.바티칸.베자 사본에는 없다. 원전 평가위원회는 이 낱말의 원전 삽입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질좋은 사본들이 각각 없는 쪽과 있는 쪽을 다같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루카는 예루살렘 신도들의 생활을 집약하면서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기적들과 표징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제 루카는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기적을 소개한다. 이 기적은 당대의 기적 이야기 서술양식에 따라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짜여 있다.

 

이 치유사화의 전승과정에서 베드로 사도만 등장했는데, 그 근거로, 루카가 요한 사도를 덧붙였다는 설이 득세하고 있다. 그 근거로, 루카가 베드로와 요한을 짝지은 사례. 최고의회에서 이 두 사람이 함께 예수를 증거함으로써 증언의 신빙성을 높일 필요성등을 꼽는다. 이밖에도 루카의 가필이 더 있다는 점에는 학설이 일치하나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가필이냐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에서 사도들의 치유 행적을 살펴보기로 하자.

원래는 초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이야기가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루카는 이 기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베드로의 중요한 선교설교 들을 덧붙이면서 유다 최고의회와 사도단의 갈등을 소개한다. 이 갈등은 7-8장의 대박해를 준비시킨다.

 

3,1-10의 치유사화에서 강조되는 요소는 예수의 이름을 통한 절대적 치유능력이다. 성전 문 곁에서 자선을 요청하는 태생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은 없어도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다고 하면서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한다. 이름은 그 사람에게 딸린 소유물이나 속성이 아니라 인격과 신원 자체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께 앉은뱅이의 치유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치유능력을 보여준다.

 

예수의 이름을 통한 치유능력은 세상의 온갖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 치유는 신앙을 일깨우는 한 방법이다. 앉은뱅이를 치유하고 난 베드로는 경이와 놀라움에 휩싸인 군중에게 설교한다. 이 설교들 역시 구조와 내용이 루카의 다른 선교설교들과 비슷하다. 루카가 기본 틀에 덧붙인 내용은 상황변화에 따른 도입부분. 믿음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더 장황한 성서 인용 및 증언 등이다.

 

일반 군중에게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데 제관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와 사도들을 체포했다. 사도들의 죄목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전한 행위였다. 그러나 사도들이 체포된 계기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라는 교리 문제가 아니라 앉은뱅이의 치유라는 실제 문제였다. 다음 날 베드로는 또 다른 선교설교를 하게 된다. 이 설교 역시 상황에 따른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선교설교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한다.

 

사도들을 심문하던 최고의회의 의원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뒤에 그의 치유행적이 명백한 표징으로 드러난 이상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백성이 두려워 베드로와 요한을 풀어준다. 풀려난 사도들은 다른 형제들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함께 큰 소리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의 요지는 하느님이 메시아로 뽑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설쳐 댔지만 이는 시편의 예언을 통해 하느님이 미리 정해 놓으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사도들과 형제들은 이제 예수를 박해하던 유다인들이 그분의 종들을 협박하게 되었으니 하느님이 친히 권능의 손을 펴시어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의 표징과 기적을 보여주십사고 간절히 기도한다.

 

베드로의 치유행적과 두 편의 설교가 사두가이파를 중심으로 하는 유다 최고의회의 반대에 부딪쳤다는 사실은 앞으로 닥치게 될 유다인들로 인한 그리스도교의 대박해를 미리 준비시킨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하번 설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사도행전에서 설교들을 빼놓는다면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씀을 삭제하고 그분의 기적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무미건조할 것이다. 스테파노의 설교를 제외하고 사도행전의 설교들은 일반 설교보다 그 길이가 짧으나 효과에 있어서는 실제 설교 못지않게 청중과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탄복을 자아내게 한다.

 

 

 

 

 

복음<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1

두 사람은 열두 제자단에 속하지 않으나 예수께 동조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엠마오 마을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 날은 현재의 문맥상 빈 무덤을 발견하고 확인한 일요일.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에 만찬례를 지냈기 때문에 엠마오 발현 날짜를 일요일로 잡았을 것이다.

 

한 스타디온은 약 185미터. 파피루스 75.바티칸.알렉산드리아. 베자 사본에서는 육십 스타디온이라 하는데 환산하면 약 11키로미터. 그러나 시나이 사본에서는 백 육십 스타디온이라 하는데 환산하면 29.5키로미터. “엠마오가 어딘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다. 여러 후보지가 있다. 그냥 나열만 하면 예루살렘에서 6.5키로미터 떨어진 암마우스 일명 쿨론예. 12키로미터 떨어진 엘 꾸베이베. 13키로미터 떨어진 아부 고셔. 32.5키로미터 떨어진 암와스 일명 니코폴리스.

 

18

요한 19.25에 의하면 글로파의(아내) 마리아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지켜보았는데, 글로파와 여기 18절의 글레오파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21

루카복음에는 속량명사가 1.68에 한 번, “속량하다동사가 24.21에 한 번 나온다.

 

24

12절에서는 베드로 홀로 무덤에 가서 그것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 20,3-10에서는 베드로와 애제자가 함께 가서 확인했다고 한다.

 

27

유다인들은 구약성서 전체를 가리켜 율법과 예언자들”,“모세와 모든 예언자”, 또는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과 시편들이라고 일컬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약성서를 이해했다. 그리스도야말로 구약성서의 목표요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신약성서 필자들은 한결같이 예언과 성취의 도식을 사용했다.

 

30

이스라엘에서는 식사 때 가장이 30절과 같은 행동을 한다. 예수께서도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최후만찬때 그렇게 하셨다.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이 만찬례를 거행할 때도 역시 그렇게 했다. 30-31절은 분명히 교회의 만찬례를 암시한다.

 

34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 우선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이 신조(1코린15.3-7)에도 들어 있다. 베드로는 제자 가운데 맨 먼저 부활하신 예수를 뵌 다음 열한 제자와 동료들을 집결시키고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했다.(22.32).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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