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 자비주일에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1 조회수1,210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은 자비주일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부활 제2주일에 제정하시어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저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함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당신 외아들의 생명을 제물로 잡아서 그 희생의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서 549항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순히 세상의 모든 불행을 없애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셨다고 천명합니다. 또한 651항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확인해 주시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위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가톨릭 교리는 표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두 번째 맞는 부활주일에 부활과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는 것도 의미 있게 주일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자비의 히브리어 원어적인 의미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생명을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한자를 파자로 풀이해본다면 흑암과 같은 허물을 가진 마음을 꾸짖는 마음과 찢어지는 아픈 마음을 가리켜 자비라고 합니다. 배속에 한 생명을 품는 과정을 한번 묵상해보겠습니다. 열 달을 품으시면서 혹여나 생명이 어찌 될까 봐 노심초사하시며 품으시고 산고라는 고통까지 감내를 하시면서까지 품어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산고와 함께 따라오는 게 있습니다. 피흘림입니다. 피는 생명이라고 성경에도 나옵니다. 또한 우리가 보는 창세기에 나오는 화와도 주석상의 의미도 생명입니다.

 

화와의 범죄로 인해 출산이라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화와인 성모님을 선택하시어 인류를 구원하실 어머니가 되길 바라셨습니다. (에페 1,4) 어머니께서는 두 번의 산고를 치르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낳으셨을 때인 육신의 산고와 또 한 번은 마음의 산고인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인 부활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 수반되는 극도의 고통이라고 봅니다.

 

어찌 보면 성모님도 또한 피해 아닌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처녀에게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실 거라는 놀라운 일을 감당하시면서까지 그것도 모자라 그렇게 얻은 아들을 십자가상에서 죽게 되는 것을 두눈으로 보시면서 아들을 가슴을 묻는 단장의 고통을 느끼시게 해 드린 데에는 우리의 죄도 한몫한 게 사실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의 역사는 그야말로 한마디로 말하면 피눈물 나는 눈물과 고통의 연속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겪으셨던 이와 같은 마음을 하느님께서도 똑같이 느끼셨을 겁니다. 하느님 아버지 속에 예수님이 거하시고 예수님 안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한몸이라 아들이 살아간 그 삶의 궤적을 따라 성부 하느님의 마음도 고통의 시간을 함께하셨다는 것은 두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모님 이 세 분이 겪으신 모든 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해 얼마든지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슴 찢어지는 단장의 고통과 같은 사랑인, 자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세 분이 그 모든 어려움도 어머니의 산고와 같은 고통을 감내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들의 자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될 운명의 처지에 놓인 가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걸 구제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야말로 그건 천하에 배은망덕한 사람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최상의 효도는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게 가장 기뻐하실 효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오늘 복음과 맞추어서 묵상해본다면, 예수님과 함께하는 평화와 함께’, 예수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거룩한 영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남을 용서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또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겠다고 입으로 맹세를 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된 이상 이 약속은 영원히 철회할 수 없는 약속입니다. 사람과 한 약속은 어길 수 있어도 하느님과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나약한 인간이라 흔들릴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고, 지키려는 중심만은 육비에 새겨서 그 은혜를 잊지 않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우리 모두 소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처럼 쉬운 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언제까지나 거듭 되풀이 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한걸음 한걸음씩 발걸음을 내디뎌서 언젠가는 그 약속을 지키는 날이 올 수 있기를 학수고대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