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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4.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1 조회수1,539 추천수5 반대(0) 신고

 

(토마의 불신앙, 헨드릭 테르브루그헨(Hendrick ter Brugghen)작)

2021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복음 요한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신학생 때까지 저 자신을 올빼미형

인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밤이 되면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고, 아침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면서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은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신부가 된 후, 어느 교육에 참석해서

새벽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소중함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자명종 시계 몇 개를 머리맡에 두고서

억지로라도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현재, 아무리 전날에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5시 전에는 일어납니다. 20년 이상을 이렇게

변함없이 살았기에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지금껏 우리가

꾸준히 해왔던 어떤 행동에는 습관이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듀크 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 행동 중 40%

의사결정이 아니라 습관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나쁜 습관을 하나하나

좋은 습관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담배를 몇십 년 동안 펴오셨다는 분이 어느 날 보니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능한 것인 줄 알았는데, 몇 달 동안 계속해서

피우지 않다 보니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을 버려야 주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된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잘못된 습관으로 주님과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잘못된 습관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못했습니다. 물론 부활은 분명 믿기 힘든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는 부활의 표징을 미리 보여주셨고,

공생활 중에 당신의 부활을 자주 언급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다.”라는

단정이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믿지 않았던 토마스 사도를 향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하시는 강한 메시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상황은 바로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닐까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몸과 마음을 느끼면서,

이 세상을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나의 좋은 습관이 되어서

더욱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혼자 외롭게 살지, 둘이 괴롭게 살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보통 사람?

어떤 청년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머니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혼할 때가 되어 가끔 선을 보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반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집안이 안 좋다,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인물이 별로다.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시는데,

도저히 어머니의 마음을 채울만한 자신의 아내는

세상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전에 이런 말씀을 제게 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욕심 없어요.

그냥 보통 사람이면 돼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좋아하기만 하면 되지요.”

정말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보통 사람의 기준이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만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이 보통이라고 내세운 조건은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이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기준은 내게만 너그럽고

남에게만 엄격했던 것은 아닐까요?

어떤 기준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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