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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수녀님의 일침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4 조회수1,609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심판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무서운 공포심이 떠오른다는 게 일반적일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가만 보면 세상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인 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의 양심에 반해서도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세상 법이 엄하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두려움도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원리도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종교적으로 말하는 심판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건 조금 성질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심판의 개념은 아주 단순합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함으로써 빚어진 결과가 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둠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근데 왜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요? 악을 저지르지만 않으면, 다시 말해 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어둠을 사랑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됩니다. 악을 저지르게 되었을 땐 악한 성질의 표양이 빛으로 나아가게 되면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빛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어둠이라는 죄의 속성은 빛이신 하느님으로 나아가는 것을 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달 말일에 저는 대전에서 한 수녀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사실 이 수녀님을 알게 된 시점은 작년이었습니다. 외국에 계실 때 우연히 제 카페에 있는 글을 보신 후에 저에게 메일이 와서 인연이 되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에서 10년 동안 영성심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신 분인데 제가 부탁을 드려서 만난 것입니다. 마침 지금은 한국에 잠시 계셔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수녀님도 저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심리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특히나 이것도 일반적인 것도 포함하지만 신앙인 영성에 관련된 분야라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본 것이지만 제가 올린 영성적인 글이 수녀님께는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었나 봅니다. 사실 수녀님께서 메일을 보내셨을 때 수녀님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셨고 마침 수녀님이 나름 연구하는 분야가 있는데 그 대상인 표본이 되어줄 수 있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사실 조금 황당했습니다만 몇 번 메일을 통해 주고받으면서 오히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측면이 많아 그동안 메일만으로 연락을 취하다가 이번에 수녀님을 만나 한번 상담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났습니다.

 

이분은 한국에 계신 분이 아니고 로마에 있는 수녀원에 계십니다. 이번에 저는 이 수녀님을 통해 약 5시간 정도의 만남을 가졌지만 2시간 정도는 수녀님으로부터 3시간 동안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일종의 신앙 강의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들었습니다. 이번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수녀님은 10년 동안 이 분야에 대해 죽어라고 공부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전에 독일에서 개신교 신학을 4년 공부하신 후에 로마에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그때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의 일부분 중 아주 인상적인 내용이 있어서 하나 언급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굳이 심리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철학이나 동양철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진짜 자기의 모습과 거짓의 모습 이렇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실제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남과 공존하며 살기 위해서는 때로는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때론 경쟁 아닌 경쟁을 해야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원래의 자기 모습이 아닌 다른 자기의 모습으로 위장하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런 자신의 모습을 인식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경우도 있고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인식을 하면서 하는데, 이때는 약간 양심이 작용하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그런 상황을 합리화하지만 그게 정당한 게 아니라는 건 자기 양심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인간은 이런 경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게 어느 시점에서 그만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마약중독처럼 중독이 되면 나중에는 위장한 자신의 모습으로 굳어져서 이전의 모습으로 좀처럼 되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고 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혼이 병들어 있는데 그 병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이 아주 심각한 내용입니다.

 

육신의 병은 사람이 아프거나 통증이 있기 때문에 자각을 하고 어떻게 치료를 할 수가 있지만, 영혼의 병은 상대적으로 육신의 병처럼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느낄 수가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영혼이 병들어 있어도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수녀님이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신앙공동체에는 이런 환자들과 같이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환자이면서 환자인지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표현을 순화해서 표현을 했습니다만 우습기도 하지만 슬픈 내용입니다. 그래서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누구나 인간은 이런 속성을 가지지만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중독으로 갈 수 있는 임계점인 마지노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을 넘어가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면서 강조하신 게 소죄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습니다.

 

우린 대죄는 누구나 심각성을 잘 인식하기 때문에 짓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려는 성향이 있지만, 소죄는 당연히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소죄를 범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인간인지라 소죄를 지을 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게, 이런 당연하다는 생각이 나중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독의 위험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다 언급할 수가 없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사실 빛이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상태가 바로 하느님과 영원한 단절인 상태입니다. 이런 게 우리 가톨릭 교리상으로 그런 상태가 지옥과 같은 곳이 됩니다.

 

수녀님께서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가장 강조하신 게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데, 숨기면 숨길수록 자신의 영혼에는 좋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걸 극복하지 않으면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듯이, 우리의 영혼도 치유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갈 수가 있기 때문에 이점을 항상 염두에 두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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