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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진리를 실천하는 이 (요한3,16-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4 조회수1,383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4월 14일 수요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진리를 실천하는 이 (요한3,16-21)

   

 

1독서<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사도5,17-26)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8-9(◎ 7)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알렐루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주님을 바라보아라기쁨이 넘치고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행복하여라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복음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5,17-26)

 

그무렵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가거라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17~21)

 

본절부터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사도들에 대한 핍박과 투옥 및 천사들에 의한 구출사도들에 대한 대사제의 직접적인 문책그리고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중재로 인한 석방 등과 같은 매우 긴박하고도 역동적인 이야기가 5장 끝절까지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의 전파가 결코 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동시에 핍박이 복음 전파를 절대 방해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들을 적대시한 자가 바로 대사제이며사도들이 당하는 박해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조직적인 박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으로 사두가이파들을 대사제와 함께 있는 동조자로 소개한다.

 

이것은 이들이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사제의 역할을 가장 중시하였고대사제 측근에 있었던 귀족들이 특히 사두가이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당시의 정치 집단인 헤롯왕이나 로마인들과 연합하여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다.

 

사두가이파들이 대사제를 도와 사도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 것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일어난 역동적인 복음의 역사가 많은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감으로써 그들 특권층이 누리고 있던 기득권이 위협을 받았고높아만 가는 인기에 시기가 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앞장서서 죽인 예수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교리와 상충되었을 뿐 아니라 과거 그들이 범한 죄악상이 드러나며더 나아가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민란까지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두가이파들은 누구보다 앞서 사도들을 잡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시기심('젤루'; zelu)이 가득 차(epllesthesan; 에플레스테산)'는 진실에 입각하거나 바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기에 의하여 박해가 발생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득차'에 해당하는 '에플레스테산'의 원형 '플레도'(pledo)는 '충만하다'(사도4,8.31), '채우다'(루카5,7)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써 빈틈을 찾아볼 수 없으며 넘칠 정도로 가득 채우는 상태를 말한다.

 

당시 이들은 끓어오르는 시기심으로 인하여 다른 상황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오직 사도들을 박해할 생각으로만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유대 종교를 대표하는 이들이 이성을 잃고 이기심에 따라 분별없이 행동하는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 당시 유대교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다.

 

'공영 감옥'(teresei demosia; 테레세이 데모시아)에서 '데모시오스'(demosios; 공적인)라는 형용사를 첨가하여 굳이 공영 감옥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도들이 비록 단단히 잠긴 옥에 갇혀 공적 기관의 삼엄한 감시와 경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크신 하느님의 역사로 나오게 된 것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19)

 

'데리고 나와'로 번역된 '엑사가곤'(eksagagon)의 기본형 '엑사고'(eksago)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인도하다'는 뜻의 '아고'(ago)가 합성된 형태로서 '(밖으로)인도하여 내다'(요한10,3),'끌어내다', '데리고 나가다'(마르8,23)는 뜻이다.

 

이 단어의 의미에는 두 가지 함축적인 사실이 들어있다.

 

첫째로 이 단어는 속박과 고통에서의 '구원'을 가리킨다(요한10,3; 사도7,36). 본문에서는 사도들이 감옥의 속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된 것을 가리킨다.

 

둘째로 이 단어의 의미속에는 '강제성'의 개념이 들어 있다(마르15,20). 즉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끌어냄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이 동사가 이러한 두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사도들의 구출의 목적이 다음 절에 나오듯이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시급한 사명이 사도들에게 있음을 드러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옥에 갇혀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던 사도들을 주님의 천사가 어떻게 쉽게 빼낼 수가 있었을까?

 

본절에서는 필리피 감옥의 경우처럼 감옥터가 움직이고 지진이 나는 기적 (사도16,26)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주님의 천사는 초자연적인 영적 능력으로 경비병들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사도들을 이끌고 나왔을 것이다.

 

하느님은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어둡게 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이 (2열왕 6,18) 이를 뒷받침한다.

 

사도들을 옥에서 이끌어 낸 주님의 천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사명을 부여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생명'(zoe; 조에)이란이 세상에 속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영적 생명을 가리킨다(마태18,19; 마르10,30; 요한3,15).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구원의 생명을 말한다.

 

본문의 '이 생명'에서 '이것'을 가리키는 '타우테스'(tautes)는 지금까지 사도들이 계속해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되는 생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씀'은 '타 레마타'(ta remata)로 표현되어 있는데이것은 '말씀'을 가리키는 '토 레마'(to rema)의 복수형으로서 '설교','연설'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조용히 사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 즉 '케뤼그마'(kerygma)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들이 말씀을 전하되 대담하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이 말씀 앞에 '모두'로 번역된 '판타'(panta)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는데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파되어야함을 분명히 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혹시라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구원의 말씀들을 단 하나라도 생략하거나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구원의 말씀들이 모든 사람에게 들려져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고통 없이는 생명을 낳을 수 없다>

여자가 고통이라는 시련을 통과해야만 아이(생명-기쁨)을 낳는다는 것다 아시쟌아요?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너무나- ‘이토록입니다. (주해서)

앞절~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죽을 죄인들에게 하늘의 영생을 주시기 위해 그들의 죄 값인 속죄 제물로 저주의 뱀이 되어 십자가 기둥에 달리게 하신그토록 사랑하신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래서~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말씀을 사람의 관점도덕과 윤리로 보면 심판입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으로 보면 덮으심 그 용서입니다.

 

18ㄱ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18ㄴ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용서 받아 의인이 되어 구원 받는 것입니다.(로마3,24참조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그 대속의 십자가의 길이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신 것입니다.(요한14,6)

그러니 그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은 그 자체가 이미 죄인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왜 왔어요하늘의 구원의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서요그러나 사람들은 하늘의 의로움보다 땅의 의로움을 더 믿고 의지합니다그것이 하늘의 의로움을 흉내 내는 교만의 악한 일입니다.

선이 악을 덮어 생명곧 구원을 주는 그 하느님의 의로움보다 사람이 하느님처럼 선악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구원의 의로움을 이루겠다는 것교만악입니다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힘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로움으로 죄의 용서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 십자가의 대속그 예수님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됩니다그것이 곧 하느님을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카인이 형제 아벨을 죽였듯이 말입니다의인으로 착하게 살았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듯이 말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피조물로 그분의 죄를 덮으시기 위한 그 사랑을 의지하여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만 구원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바 2,2-3) 2 쓸려 가는 검불처럼 너희가 내쫓기기 전에 주님의 타오르는 분노가 너희에게 닥치기 전에 주님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닥치기 전에 주님을 찾아라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의로움을 찾아라겸손함을 찾아라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하늘의 의로움겸손을 찾아야 합니다땅의 의로움겸손으로는 화()를 피할 수 없습니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시는 그 하늘의 진리를 아는 이는 당연히 자신의 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그래야 선의 덮으심그 예수님의 대속으로 자신의 악이 용서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됨을 믿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은자신의 의로움이 구원의 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그래서 십자가의 의로움그 복음을 말하면 듣기 싫어하고 그 사람까지 미워합니다.

그래서 제사와 윤리로 흠 없이 살았던 사울이복음을 전하는 스테파노를 죽이는데 협조했던 것입니다그 땅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던 사도 바오로를 살리시기 위해 그를 엎어 트리신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자신의 의로움그 가치를 엎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1,2-5) 2 나의 형제 여러분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4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고통 없이는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여자가 아이(생명)를 낳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시련을 통과 해야만 합니다그 시련을 통과하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그 산고(産苦)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듯이 말입니다.

 

(히브12,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12장 전체를 보면 더 힘이 될 것입니다.>

아멘.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3,16-21)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19)

 

요한복음 3장 19절은 요한복음 3장 18절 후반부에서 나온데로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가 심판을 받는 이유를 다시한번 더 밝혀 강조한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에서 '심판'에 해당하는 '크리시스'(krisis; condemnation; verdict)는 실질적 의미에 있어서 18절에 나오는 '심판하다'에 해당하는 '크리노'(krino)와 거의 동일하다.

 

불신자들이 심판받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자신의 행위가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에서 동사 ''(en; were)은 미완료형 이므로이 사람들의 과거 전력을 드러낸다.

 

즉 희랍어에서 미완료형은 과거에 계속 혹은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행위가 변함없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형용사 '악한'에 해당하는 '포네라'(ponera; evil)가 서술적인 위치에 있어서 이 사람들의 행위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데이 단어가 마귀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이 형용사는 '악한'뿐만 아니라 '못쓰게 된', '나쁜', '가치없는', '타락한등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복합적 의미로 쓰였다.

 

즉 이 단어는 그들이 마귀의 속성과 관련된 악행을 계속하여 저질러 왔으므로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에서 ''에 해당하는 '포스'(phos; light)는 태양과 같은 발광체를 나타내며, '어둠'에 해당하는 '스코토스'(skotos; darkness)는 이 빛이 차단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는데성경은 메시아에 의해 선포된 복음이나 구원을 ''으로 표현하고(마태4,16; 사도26,18; 에페5,13), 죄와 불신앙의 상태를 '어둠'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마태4,19; 로마2,19; 1티모5,4; 1베드5,13).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원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본성의 소유자인 인간이 죄와 불신앙을 더 사랑함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로 번역된 '말론'(mallon; rather)은 ''라는 뜻의 비교급 부사로도 쓰이지만(필리1,12; 마태10,48; 루카18,39), '~대신에 도리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10,6; 마르5,26; 로마14,13).

그렇다면 요한 복음 3장 19절은 인간이 마땅히 빛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그 대신에 도리어 어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것은 인간이 그 행위가 악하므로 빛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어둠만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근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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