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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6 조회수1,350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마치 불교에서 수행할 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주고받는 선문답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때로는 선문답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대화이거나 농담 같은 말로써도 어떤 경우에는 아주 크다란 깨달음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스님과 동자승이나 혹은 상좌랑 개울을 건너가려고 하는데 마침 비가 많이 온 터라 개울을 건너가기 힘든 아낙이 있어서 큰스님이 아낙을 업고 건너가 아낙을 맞은편까지 무사히 잘 내려다주고 또 갈 길을 재촉해서 가는데 동자승이나 상좌의 마음에는 이상한 마음만 계속 품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스님이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여자를 멀리해도 될까 말까 하는 판에 이건 여자를 등에 업고 어찌 갈 수가 있단 말인가 하며 이런 생각으로 계속 길을 가면서 마음에 스승을 향해 엉큼한 속내를 가지면서 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중간에 스님께 여쭤봅니다.

 

스님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러니 스님이 허허 웃으시면서 나는 이미 그 여인을 그곳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지금 그 여인을 아직도 지금까지 품고 왔구나? 이런 일화는 한 번쯤은 다 들어본 예화일 것입니다.

 

이 일화가 알려주는 가르침은 많이도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현상의 본질이 행위에 있느냐, 마음에 있느냐에, 달렸다는 게 스승의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 일화와 아주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대화에 등장하는 게 이 나옵니다. 실제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각은 동상이몽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복음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군중이 많이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먹일 빵이 필요하신 모양이라고 생각하셔서, 예수님께서 그 많은 군중을 먹일 빵을 어디에서 구입할 수가 있는지, 그런 의도로 자기들에게 질문을 하신 걸로 이해를 했을 겁니다.

 

물론 이 의미도 있으셨겠지만 이 과정에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것은, 다른 뜻도 가지고 계셨으리라고 보여집니다. 만약 군중이 배가 고픈 상황이라고 복음에 배경을 제시한 상태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난 상황이라면 측은한 마음이 들어라고 하는, 예수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전매특허와 같은 것을 사용하시는데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또한 필립보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두 내용을 하나로 묶어서 묵상을 해보면,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군중을 먹일 빵을 구입하기는 구입하시려고 하시는데 이때 어디라는 장소를 언급하셨습니다. 어디는 분명 장소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또 다른 의미는 요한복음에서는 빵의 의미가 예수님 그 자체를 상징하니, 이 빵은 단순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빵의 의미만을 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먹는 빵만을 의미하는 내용의 빵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허기가 진다든지 하는 내용이 있었을 겁니다. 또한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게 파스카 축제가 가까운 때라는 것이 언급돼 있는 걸로 봐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을 하면 불교의 선문답처럼 제자들의 답변을 들어보게 되면, 단순한 대답을 할 수도 있고 혹은 뛰어난 영성을 가진 제자라면, 스승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없는 질문인데도 그 대답이,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뛰어난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답변을 들어보면 그냥 단순한 답변 아니, 어쩌면 낙제 점수와 같은 대답을 합니다. 어린애가 가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무슨 수로 그 많은 사람들 입을 충당할 수가 있겠는지 하고 어림도 없는 일을 생각하고 계신다고 제자들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빵도 빵이지만, 정작 이 빵이 예수님 당신을 상징하는 의미의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답변이 나왔을 겁니다.

 

어쩌면 이때 그들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군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 정도로만 생각하는 수준으로 예수님을 이해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일어난 시점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수준이나, 군중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오십보백보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그래도 군중들이야 예수님을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고 해도, 그들은 조금은 군중들과는 다른 생각으로, 예수님의 그 질문 속에 있는 예수님의 의중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던 제자가 있었더라면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은 흐뭇해 하셨을 텐데, 오늘 복음을 보니 그렇지 못해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때 예수님께서 어떤 표정이셨을지 상상을 하니 웃음만 나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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