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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녀님의 두 번째 일침.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9 조회수1,389 추천수5 반대(1) 신고

 

마지막으로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것 중에서 두 번째 일침을 말씀드리며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 걸 다 언급하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 그래도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강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다면 많은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은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녀님께 그럼 이런 것을 책으로 출판하면 반응이 좋을 것 같다고 하니 수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사실 오랜 세월 학문적으로 나름 체계화된 이론은 이론으로써 존재할 때랑 실제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은 다양한 변수가 적용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든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게 일반 영성서적처럼 영성을 책으로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건 대화를 통해서 나누는 게 가장 나름 쉬운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간단하게 수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제가 편의상 약간 나름 제가 판단한 느낌으로 쉽게 전달해보려고 하겠습니다. 수녀님께서 근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공부하시면서 항상 의문을 가지고 계셨고 그게 쉽게 해결되지 않은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왜 남을 향해 분노하는 마음이 있는지입니다. 이와 관련한 책은 시중에 서점에 가면 많은 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몇 년 전에 마산교구에 계시는 몬시뇰 신부님으로부터 책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그냥 신부님께서 보신 후에 주신 것입니다. 읽어봐라고 하시면서요.

 

이번에 수녀님을 만나 뵙고 난 후에 다시 한 번 더 이 책을 읽어봤습니다. 이것도 이론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수녀님께서도 학문적으로 이걸 접근하면 평생을 연구해도 알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영구 미스테리한 문제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0년간 공부하시면서 어느 날 실제 삶에서 체험한 게 이론적으로 맞아떨어진 적이 있었던 경험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앞전에 글에서도 제가 표현한 게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치매 환자라는 걸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적개심도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신앙생활에 있어서 생기는 적개심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적개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의 시초는 비교하는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굳이 수녀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은 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녀님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은 차이가 납니다. 비교하는 인간의 심리는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심리입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왜 이게 문제가 되느냐 하면은 사람마다 자기가 모르는 달란트라든지 이런 게 있는데 자기가 가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는 보지 않고 남이 가진 달란트를 보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진다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언급해주셨습니다. 수녀님이 계신 수녀원에 수녀님 한 분이 계시는데 이분은 손재주가 아주 탁월하시다고 하십니다. 정말 수녀원에 계신 모든 분들이 부러워하실 정도입니다. 근데 이분은 늘 거의 우울한 모습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에서는 발표라는 걸 하는데 이 수녀님은 발표력이 아주 좋지 않다고 하십니다. 쉽게 말해서 말주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발표라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녀원에서 이 수녀님에 대해 누가 흉을 본다든지 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하십니다. 근데 이 수녀님은 자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들 자신을 향해 흉을 본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공동체 안에서도 항상 남을 불신하는 경향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다른 수녀님들도 조금은 이 부분에 대해 이 수녀님이 발표하는 부분에서는 보편적으로 봤을 때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공동체이다보니 그걸 이 수녀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수녀님이 가지고 계신 다른 달란트를 보면서 아주 부러워하는데 수녀님은 자기가 가진 달란트는 보지 못하고 자기가 못하는 부분에서만 상대적으로 남과 비교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를 설명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누구나 이 수녀님과 같은 성향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씀하시면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굳이 성경까지는 인용하지 않으셔도 될 상황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재능만 재능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봤을 땐 재능이라고 할 수가 없는데 하느님 눈으로 봤을 땐 아주 큰 재능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세상적으로는 아주 무능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무능할지 모르지만 이 사람에게 만약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달란트를 주셨다고 한다면 우린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건 수녀님이 저에게 이해를 돕고자 예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 영적인 달란트는 영적으로 뭔가 이해를 잘 하는 달란트고 또 말씀을 이해하는 탁월한 달란트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이런 예를 본다면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실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별 가치가 없는 달란트처럼 보입니다. 근데 실제로 영적으로 본다면 이 사람이 가치를 놓고 본다면 엄청난 달란트를 받은 것인데도 자기는 현실적인 눈으로 봤을 땐 그게 무가치한 달란트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실제 그런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달란트라는 걸 모르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달란트라는 게 있다는 걸 말씀하셨습니다. 가령 마음이 순박하다는 것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걸 달란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냥 단순히 착하다는 정도 이 정도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마침 오늘 복음에도 나오지만 수녀님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분들이 어쩌면 하늘나라 양식을 잘 얻을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자신이 가진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맞는 분명 보이지 않는 달란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달란트가 어떻게 보면 세상적으로 보면 무가치한 달란트처럼 보일 수가 있지만 실제는 엄청난 축복받은 달란트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런 축복을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바라보면서 자기보다 못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마음을 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이건 이해를 돕고자 한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차별되도록 창조를 한 게 아닐 겁니다. 만약 모든 사람을 똑 같이 창조를 하셨다면 얼마나 단조롭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도 맞는 말씀입니다. 결국은 달란트라는 개념으로 이해를 도운 것입니다만 다시 말해 우린 쓸데없는 비교를 하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하며 인생을 고통으로 낭비하는 삶을 산다는 게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런 사소한 일이 쌓이고 쌓이면 그게 분노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수녀님이 재미있게 표현하신 게 있습니다. 제가 남자이다 보니 만약 형제님, 세상 모든 여자가 다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면 그게 그것도 다 미인처럼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는 그런 존재로 이 세상에 여자가 있다면 그것도 따분하지 않을까요? 그걸 아시고 하느님께서 다양하게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남자들을 배려한 것이겠죠. 한바탕 웃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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