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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0 조회수1,315 추천수0 반대(0) 신고

제11회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 / 사이비 이단 클리닉



안녕하십니까? 한민택 신부입니다. 오늘은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 또 그 기준 또 지난번에 복음을 잘 모르겠다, 복음이 뭐냐? 많은 신자들이 궁금해하실 수 있는데 바로 그 복음이 무엇인지를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 신앙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슴 뛰고 흥분되면서 그런 것인지를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주제 :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 

1. 역사 안에 오신 예수님

2. 우리 안에 실편되는 구원

3. 선교의 의미

4. 한국 신앙 선조들의 모범

 

우리가 이 사이클(사이비, 이단 클리닉)을 하면서 그동안 사이비, 이단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꼬드기고 또 어떤 그릇된 교리를 전하고 있는지를 배웠는데, 사실 그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답이 다 그 안에 있었죠

 

1. 역사 안에 오신 예수님


첫 번째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역사 안에 하느님이 내려오셨다고 하면 자칫 잘못하면 신화를 떠올릴 수가 있어요. 단군신화처럼.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와서 우리와 똑같이 살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은 하느님이 역사 안에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다.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역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 저 먼 하늘 위에서 우리를 요렇게 내려보시고 감시하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서 우리와 함께 우리와 똑같이 사셨던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건데, 그것이 왜 이단과 사이비들이 하는 이야기와 전혀 다른 훨씬 더 기쁜 소식인가? 그것은 바로 그렇게 오신 이유는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그 말씀이 사실은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이 안에 담겨 있는 거죠. 사랑으로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십자가의 죄까지 쓰신 예수님의 모든 삶의 여정은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까지 온통 아버지의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이다.

 

이단, 사이비는 그들에게 하느님은 저 먼 하늘 위에서 뒷짐지고 우리 운명하고는 상관없이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를 대신 보내고 지켜만 본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이 말해주고 있는 신앙은 그거와는 전혀 다른 우리와 운명을 똑같이 함께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이죠.

 

▶ 이단이나 사이비 쪽에서는 하느님을 경외보단 공포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사이비, 그 원인이 구약성경에 있지 않을까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벌.

 

▶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 구약을 모든 걸 다 읽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질투의 하느님, 분노의 하느님, 벌주시는 하느님으로 비춰지는 내용들이 나오잖아요. 그 모든 것들이 우리는 이 시간 안에서 생각을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의 구원의 결과라고 봐야지 창세기에 있는 창조사와 선과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은 그 이야기, 뱀 이야기 이것만 다 갈가리 찢어서 보다 보면, 나무만 보게 되고 숲은 못 보게 되는 거죠.

 

▶ 사이비나 이단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에 하느님이 이 세상을 떠났다, 저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구세주 누구를 보내주셨다. 이런 식으로 이원론적으로 세상과 하느님을 분리시켜서 이게 아니라고 하는 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 또 그런 것도 있잖아요. 아버지는 한없이 자상하고 자비로우신 분인데 아이는 아버지를 때로는 무섭고 겁나게 느꼈을 때,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그렇게 표현한 것들이 구약에 있지 사실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구약성경의 흐름이고 결국 예수님이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주셨다고 이렇게 보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우리 안에 실현되는 구원


하느님께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이 되어서 오셨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알고 그분과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분과 사랑의 친교를 나누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 들어보셨잖아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내가 너희를 어떻게 사랑했느냐?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러니까 너도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내 놔! 이렇게 받아들이면 너무나 버겁고 힘든 계명이죠.

 

우리 주위에 원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원수에게 벌을 줘도 모자랄 판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너무 버거운데, 사실 그 계명의 끝자락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너희는 내 안에 머물면서 내가 아버지와 나누는 그 사랑을 너희도 맛볼 수 있다면, 참여할 수 있다면 너희도 너희 삶 안에서 놀랍고 풍요로운 열매를 맺으면서 하느님 사랑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계명은 어떤 의무감으로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초대장인 거죠. 결국에 역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먼 훗날 일어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삶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교회 안에서 특히 교부들의 전통 안에서 데이피카시오(deificatio)라고 신화, 하느님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물론 우리는 하느님일 수 없죠, 인간이지.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그런 신적 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단과 사이비들이 이야기하듯이 구원은 단순히 어떤 종말에 있을 선지자를 따라서 그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세례성사를 통해서 내 안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는 바로 그것이 구원이라는 거. 이거를 좀 인식을 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3. 선교의 의미


전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하는 말씀 하신 것도 있고 또 신천지 같은 경우는 굉장히 어떤 모략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이렇게 하는데 이런 것들을 그들은 선교라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 한국 개신교 사람들이 와서 성경을 나눠주면서 선교활동을 한다. 그리고 또 정치세력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기네들의 선교활동을 위한 어떤 토대를 준비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불만을 얘기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선교는 과연 무엇인가?

 

선교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성경은 나눠주거나 아니면 세를 부풀리거나, 모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우리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는 것이죠. 선교의 의미는 선교의 어원을 보면, '파견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파견하신 것처럼 또 당신의 성령을 교회에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파견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과 친교를 맺으면서 하나 돼서 그분으로부터 파견되어 가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선교의 본래의 의미라는 거죠.

 

이렇게 보면 사이비나 이단에서 하는 그런 선교활동은 어떻게 보면, 친구에게 다가가서 정말 사랑을 전해주면서 하느님 사랑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략과 뭘 꾸며 갖고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어떤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을 통제하고 억지로 끌고 오는 듯한 형국의 선교를 행사하는 것인데, 선교의 본래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4. 한국 신앙 선조들의 모범


이러한 신앙 특히 한국 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지금 신흥종교에 빠져 있다고 하는데, 이 한국 땅에 처음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왔을 때 그 신앙을 받아들였던 우리 한국 선조들의 신앙을 보면, 정말 놀랍고 특히 우리가 끊임없이 게속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 중에서 저는 복자 정약종의 '주교요지'라는 교리서 그리고 정하상 성인의 상재상서에 보면 그분들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 주교 요지 : 조선 후기의 순교복자이신 정약종 아우구스티노가 쓴 천주교 교리 해설서. 당시 천주교인들에게 신앙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해 준 대표적인 교리교육서였다.

 

하느님께서 저 먼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돌보시고 우리의 불쌍한 처지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끊임없이 당신의 자녀 된 품위로 들어높여 주시는 그런 하느님, 그리고 그런 하느님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계명을 열심히 지켜서 거룩한 생활을 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해 드리는 것.

 

그리고 놀라운 것이 주교 요지에도 그렇고 상재 상서에도 그렇고 교리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닌 것들, 신앙의 진리가 아닌 것들에 대한 언급이 이 안에 담겨 있어요. 지금처럼 우리가 생각하듯이 어떤 사이이, 이단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 퍼져 있었던 민간신앙이라든가, 풍수지리 아니면 어떤 때는 불교 이야기도 나옵니다.

 

불교의 어떤 역사 안에서도 부당하고 부조리한 모습을 보이는 그런 모습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종교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때 당시 사람들이 신앙이 아닌 것을 인식하고 진정한 신앙으로 갈 수 있도록 식별력을 키워주는 신앙 교육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그런 예를 본받아서 우리 역시 이단과 사이비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들을 손가락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느님, 우리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알고, 아닌 것이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을 때, 식별력을 갖고 진정한 하느님을 알고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의 덕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아주 중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에 대해서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http://www.cpbc.co.kr/CMS/tv/program/pro_sub.php?src=%2FCMS%2Ftv%2Fprogram%2Fview_list.php%3Fprogram_fid%3D10072%26menu_fid%3D10075&program_fid=10072&menu_fid=10075&cid=&yyyym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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