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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6,35-4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1 조회수1,01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6,35-40)

 

1독서<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8,1-8)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화답송 시편 66(65),1-3ㄱㄴ.4-5.6-7(◎ 1)

◎ 온 세상아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알렐루야.

○ 온 세상아하느님께 환호하여라그 이름그 영광을 노래하여라영광과 찬양을 드려라하느님께 아뢰어라. “당신이 하신 일들 놀랍기도 하옵니다!” 

○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너희는 와서 보아라하느님의 업적을사람들에게 이루신 놀라운 그 위업을

○ 바다를 바꾸어 마른땅 만드시니사람들은 맨발로 건너갔네거기서 우리는 그분과 함께 기뻐하네그분은 영원히 권능으로 다스리신다

 

복음<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6,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8,1ㄴ-8)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3-4)

 

원문에 '사울'로 번역된 '사울로스'(Saulos)가 문장의 맨 앞에 나온다.

이것은 회심하기 전 사울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모습을 강조하여 그 이후의 헌신적인 사울의 모습과 대조시키기 위한 기교적 표현이다.

 

여기서 '없애 버리려고'로 번역된 '엘뤼마이네토'(ellymaineto)는 '황폐하게 하다', '망하게 하다', '학대하다등으로 번역되는 '뤼마이노마이'(lymainomai)의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이다.

이 단어는 멧돼지가 밭에 들어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잠언 18장 9절에 '제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파괴자의 형제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못쓰게 만들다', '철저히 파괴하다', 비유적으로 '사람을 망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사울은 매우 강렬한 기세로 그리스도교를 계속 핍박하려고 덤볐던 것이다사울의 의도는 그리스도교를 말살하는 것이었으며그 양상은 그리스도교를 짓밟고 못쓰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울이 아무리 난폭하고 파괴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박해하여도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결코 진멸되거나 말살되지 않았다이것은 초대 교회의 역사 및 교회사를 통해 여실이 증명되고 있다.

 

한편사울이 박해의 대상으로 삼은 자는 '남자든 여자든'으로 표현된 '안드라스 카이 귀나이카스'(andras kai gynaikas)이다.

이것은 사울이 '남녀'를 끌어다가 감옥에 가두는 그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표현인 동시에 당시 교회안에서의 여자의 비중도 매우 컸다는 것을 암시한다.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 더 늘어났다.' (사도5,14)

당시 사회 관습으로 볼 때 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충만을 받은 여자들은 복음 전파나 교회안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4)

 

사도행전 8장 4절부터 13절까지는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던 복음이 두루 널리 퍼져서 사마리아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사도행전 1장 8절의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대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되는 시발점이 기록된 구절이 바로 사도행전 8장 4절이다.

 

본문의 '흩어진 사람들즉 '핍박으로 흩어진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어떤 안전한 곳에 숨어 버린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다녔다고 말한다.

여기서 '흩어진 사람들'을 뜻하는 '디아스파렌테스'(diasparentes)의 원형 '디아스페이로'(diaspeiro)는 '분배'(distribution)를 의미하는 전치사 '디아' (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이로'(speiro)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원어적 뉘앙스로 볼 때이 흩어진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마치 씨앗처럼 널리 퍼져 많은 결실을 맺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로 번역된 '디엘톤'(dielthon)은 '~을 통하여 다니다'라는 의미의 동사 '디에르코마이'(dierchomai)의 부정(不定과거 복수(pl.)이다.

 

'디엘톤'은 '모든 곳으로 갔다'(went everywhere)와 '가는 곳마다' (wherever they went) 그리고 '주위를 다녔다'(went around)등으로 번역되어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복음 선포를 암시하고 있다.

스테파노가 순교를 당하였고많은 그리스도교 남녀 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었는데도복음의 전파가 더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가고 있음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형제들이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확신을 얻고두려움 없이 더욱 대담하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필리1,14).

 

결코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박해와 핍박이 나쁜 것만이 아니며교회의 영혼인 성령께서는 박해를 통한 흩어짐을 통해 더 많은 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볼 때우리가 복음을 전하거나 살다가 겪게 되는 고통이나 핍박 때문에 실망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으며그럴수록 더욱 더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창조주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지금 현재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하십니다.

 

(요한6,37-40)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결코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누구를 왜 보내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왜 물리치지 않으실까요창조 이전에 하느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에페1,3-6)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내주신 사랑그 사랑의 약속으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창조 이전부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곧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속그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이미 예비 하신그래서 그 사랑의 은총은혜에 감사로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듯이고 구원의 완성입니다.(이사43,7참조그 모든 것이 입니다그 복그 하느님의 은총사랑을 어찌 인간의 지각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그런데 어제 묵상했듯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하늘의 복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땅의 복육의 생명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땅의 복을 달라고 미사도 드리고 기도합니다. ‘주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없어질썩어질(요한6,27) 땅의 복을 위해 죽으셨다는 말입니까아니지요.

 

(루가12,13-15)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동생이 형 유산을 나누어 받겠다는 것정당한 것입니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예수님은하느님과 사람들 사이를 중재하시지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는 않으십니다그러나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통해 하느님의 듯인 구원의 일을 하십니다곧 하늘의 생명을 깨닫게 하십니다.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창조 이전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그 하느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항상 다시~’이신 분이십니다.


(묵시1,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전과 지금과 앞으로의 전능하신 분이십니다그래서 땅의 복생명을 위한곧 영원히 땅에 갇히는 그 길에서부활의 하늘의 복생명의 길로 돌아서는 그 메타노이아(회개)로 오늘 다시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믿으면 됩니다.

누구도아무도 그 예수님의 대속을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께 갈 수 없다(요한14,6) 하셨으니그래서 다음 41절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로 말씀을 하십니다.


다시 37절이하로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현재형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미래형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현재형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과거형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현재형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미래형)

= 각자현재의 하느님께 나오게 되는 것그래서 지금 돌아오는 이들과 앞으로 돌아올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통한 용서구원(생명)의 기쁜 소식그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히브4,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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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수요일 복음(요한6,35~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40)

 

요한복음 6장 40절은 요한복음 6장 39절에 나오는 내용을 다시 한번 더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 복음 6장 39절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른 구원의 확실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그 일에 함께 동참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의 목적이 선택받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는부활을 통한 완전한 구원임을 밝히셨다.

하지만 요한복음 6장 40절은 예수님을 믿게 된 자의 구원의 확실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하느님의 선택이 예수님을 믿는 결과로 나타나며이것이 결국 영원한 생명으로 귀결됨을 나타내는반복을 통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라는 문구는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성부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로 정하셨는지 명확하게 알게 한다그것은 바로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보고'에 해당하는 '호 테오론'(ho theoron; who see)은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데아무 의미 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확실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요한12,45).

 

'테오론'(theoron)의 원형인 '테오레오'(theoreo)는 단순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호라오'(horao)와 달리, '지각하다', '인식하다'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이 동사의 현재 분사인 '호 테오론' (ho theoron)은 인간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단순히 호기심으로 구경하는 사람들과는 달리그분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정확히 인식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각이나 인식 행위 자체가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다시 '믿음'이라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믿는 사람'에 해당하는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pisteuon eis auton; who believes in him)이 되어야 비로소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새 성경은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him)이라는 대명사를 생략하고 번역하지 않았는데믿음의 대상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강조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번역하는 것이 좋다.

또한 '믿는 사람'에 해당하는 '피스튜온'(pisteuon)은 '피스튜오'(pisteuo)의 현재 분사로 동작의 계속 및 반복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게 하는 시제이다이것은 과거의 믿음이나 단절되는 믿음이 아니며계속적인 신뢰와 끊임없는 순종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예식에 따라 형식적으로 하는 신앙 고백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삶이라는 언어로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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