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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3주간 금요일] 하늘에서 내려온 빵 (요한6,52-5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3 조회수88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4월 23일 금요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하늘에서 내려온 빵 (요한6,52-59)

 

1독서<는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9,1-20)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그리고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그가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화답송 시편 117(116),1.2ㄱㄴ(◎ 마르 16,15 참조)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알렐루야.

○ 주님을 찬양하여라모든 민족들아주님을 찬미하여라모든 겨레들아

○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복음<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2-59)

그때에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사도9,1-20)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그는 땅에 엎어졌다그리고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 "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사울이 "주님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예수다." (3~5)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사건이다여기 사도행전 9장 3절에서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사도행전 22장 6절에는 '정오쯤'이라고 시간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동족 유다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사도 바오로의 섬세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거기서 '정오쯤'으로 번역된 '페리 메셈브리안'(peri mesembrian; about noon)은 '가운데'를 뜻하는 '메소스'(mesos)와 ''을 뜻하는 '헤메라'(hemera)에서 유래한 '메셈브리아'(mesembria)가 시간(마태20,3; 마르6,48)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전치사 '페리'(peri; about)와 결합한 것이다.

 

자신의 회심 사건의 회고 가운데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도 바오로의 상세한 보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도행전 9장 3절에는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고 되어 있지만사도행전 22장 6절에는 '큰 빛'이 번쩍였다고 나온다.

즉 하루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에 이 태양 빛보다 훨씬 강력한 '큰 빛'이 등장하였음을 말함으로써 초자연적 현상이 분명히 일어났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사도22,6)

 

사도행전 22장 6절에서는 그 빛이 단순한 빛이 아닌 '큰 빛즉 '포스 히카논' (phos hikanon)으로 되어 있다.

특히 ''(great)으로 번역된 '히카논'(hikanon)은 '충분한'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사도11,24; 19,26). 따라서 본절에서 언급된 '큰 빛'은 '많은 빛또는 '어마어마한 빛'(a great light)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오에 내리쬐는 태양 광선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신적인 빛이 분명하다이 빛이 초월적이며 신적인 빛이라는 사실은 '갑자기'로 번역된 '엑사이프네스'(eksaiphnes)가 더욱 강조해 준다이 단어는 '갑자기'라는 뜻과 더불어 '뜻밖에', '홀연히'(suddenly)의 의미도 지닌다.

 

신약 성경에 사용된 5회의 용례 모두가 신적이며 초월적인 일들의 급격한 진입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사도9,3; 마르13,36; 루카2,13; 9.39).

따라서 사도행전 22장 6절은 태양과는 또 다른신적이며 초월적인 어마어마한 빛이 '갑자기바오로를 비춘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그런데 이 빛이 사도 바오로를 둘러 비추고 있다.

 

여기서 '둘레를 비추었다'로 번역된 '페리아스트랍사이'(periastrapsai)는 '주위에', '둘레에'를 뜻하는 전치사'페리'(peri)와 '붙들어매다', '고착시키다'를 뜻하는 '합토'(hapto)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합성 동사이다.

따라서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 때이 구절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어마어마한 신적이며 초월적인 빛이 사도 바오로 주위를 빙 둘러싸고그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이 구절은 사도 바오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 장면을 기록한 사도행전 22장 7절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과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서 신적이며 초월적인 빛에 압도된 사도 바오로가 엎드러져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을 회고하는 장면이다.

 

사도 바오로가 엎어진 이 사건이 바로 신적이며 초월적인 어마어마한 빛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엎어졌다'로 번역된 '에페사'(epesa)는 '떨어지다', '넘어지다', '엎어지다'의 뜻을 지닌 원형 '핍토'(pipto)의 부정 과거형이다.

이 단어는 사도 바오로에게 비친 큰 빛이 단순히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적인 힘을 가진 것이어서 그를 무력화시켰음을 시사한다.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사도9,4; 사도22,7)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26장 14절을 보면, "그리고 나는 히브리말로, '사울아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뾰족한 막대기를 차면 너만 아프다.'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히브리 말로'란 표현은 사도 바오로가 들은 음성이 당시 팔레스티나에 살던 유대인들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사용하던 아람어화된 히브리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도 바오로의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을 두 번 부르는 이중 호격을 사용했다.

 

신약 성경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어떤 대상의 이름을 부르시는 경우가 몇 번 나타나는데이때마다 연민을 품은 애정이 가득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루카10,41; 22,31).

'박해하느냐'로 번역된 '디오케이스'(diokeis)는 '집요하게 괴롭히다'를 뜻하는 '디오코'(dioko)의 현재 능동태이다.

 

여기서 능동태가 사용된 것은 사도 바오로가 산헤드린의 재가를 거치고 대사제의 수락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지만(사도9,1~2; 22,5), 사실상 대사제나 온 원로단의 수락이나 동의가 그에게 있어서 주요한 동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는 자기 스스로 즉 능동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 동사가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사도 바오로는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일을 수행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오로가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외에도 실제로는 더 많은 박해와 핍박을 가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도행전 9장과 사도행전 22장의 같은 내용 중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 사도행전 26장 14절에는 '뾰족한 막대기를 차면 너만 아프다'라고 번역된 '스클레론 소이 프로스 켄트라 락티제인'(sklleron soi pros kentra laktizein; It is hard for you to kick against the pricks)라는 표현으로 더 나온다.

 

이것은 당시에 자주 사용되던 격언으로서 '가시채를 차서 심한 상처를 입은 소'에서 유래한 것이며이와 거의 동일한 표현이 아에스킬루스(Aeschylus)의 저서 <아가멤논>에 나오는데거기에는 '가시채를 바로 차지 말라'를 뜻하는 '프로스 켄트라 메 락티조'(pros kentra me laktizo)라고 기록되어 있다.

 

'뾰족한 막대기'(가시채)로 번역된 '켄트라'(kentra)는 '켄트론'(kentron)의 복수형으로서 쟁기질하는 사람의 손에 있는 소몰이 '꼬챙이'를 가리킨다.

이것은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막대기로서소가 말을 듣지 않으면 찌르기 위해 농부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만약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그 소는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게 되어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농경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격언인데, '신을 대적하는 행동은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라는 교훈적인 의미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어리석은 열정으로 하느님께 대적하는 바오로를 예수님께서 직접 꾸짖으신 것이다.

 

사실 바오로는 실제로 예수님을 핍박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예수님께서는 바오로를 예수님 당신 자신의 박해자로 지목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바오로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을 뿐이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사도9,5; 22,8; 26,15)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던 (마태28,20)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당할 때 그들만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늘 같이 계셨음을 보여준다.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예수님을 먹고 그분의 성품으로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이 삼켜지는 것신앙 생활입니다.

 

(요한6,52-59)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어제 우리는 주님의 살을 말씀으로피로 맺는 새 계약으로 묵상했습니다그러나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따지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죄의 용서로 생명을 주시는 그 하느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십자가의 피로 맺는 새 계약의 물입니다.

 

(요한19,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신포도죄성을 뜻함(예레미야31,30)

우리의 죄를 다 드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먹고마시는 현재형으로 계속을 뜻합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어제로부터 오늘을 흘러 내일까지 계속 유효하니까요묵시-첫장1,8 마지막장22.12 참조)

 

성령께서도 계속 증언하십니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먹는가에 따라 사람의 형질과 기질정신과 영혼까지 영향을 준답니다그럴 듯 예수님의 살과 피그 복음은 먹어우리의 형질과 기질이 예수의 형질과 기질로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예수의 정신과 성품혼이 되는 것입니다사람의 말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담으면 심판으로 죽음을 주지만~

예수님의 말씀십자가의 복음을 담으면 그분의 대속으로 죄의 용서로 구원하늘의 생명을 얻습니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만나를 육을 위한 빵으로 먹었기에 죽었습니다영을 위한 말씀으로 먹으면 삽니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율법의 의로움그 자신들의 선그 자기 의로움으로 생명을 얻겠다는 이들이 사는 곳카파르나움에서 그들을 당신의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으로 당신의 생명을 주시려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이 세상 것에 가치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것의 가치가 치워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채워져 그 예수님으로 사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영원한 생명을 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1코린1,23-24)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아멘.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요한6,52~5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3)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51절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라는 교훈을 더욱 확장해서생명을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그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과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살을 먹는 문제만으로도 그들 사이에 거친 논쟁이 벌어졌는데피도 마셔야 한다는 예수님의 주장은 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특히 모세의 율법이 피를 먹는 것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레위7,26.27),

 

하지만 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 속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선포였다여기서 '얻지 못한다'에 해당하는 '우크 에케테'(euk echete; you have no)는 현제 시제로서 시대를 초월하여 변치 않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체성사를 암시하는 표현으로서예수님의 살을 뜻하는 빵(성체)과 예수님의 피를 뜻하는 포도주(성혈)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서를 쓴 시기인 1C 후반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지향했던 성체성사의 궁극적인 의미가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과 일치하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데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살과 피'는 히브리적인 어법에 따르면, '전인'(全人)을 의미하는데살과 피를 먹는 행위는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일치 혹은 합일을 의미하며예수님의 대속적인 희생 제물을 영혼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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