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영원한 생명의 말씀 (요한6,60ㄴ-6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4 조회수1,79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4월 24일 토요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영원한 생명의 말씀 (요한6,60-69)

 

 

1독서<교회는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사도9,31-42)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화답송 시편 116(114115),12-13.14-15.16-17(◎ 12)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알렐루야.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구원의 잔 받들고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주님저는 당신의 종저는 당신의 종당신 여종의 아들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며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복음<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6,60-69)

60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9,31-42) 

"야포에는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이 이름은 그리스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6~37)

 

사도행전 9장 36절에서부터 42절까지는 베드로가 죽은 타비타(Tabitha)를 살림으로써 야포(원문에는 '이옵페'; ioppe)지역에서도 이것을 계기로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이 일어난 야포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50km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이다베드로는 팔레스티나 서부 지역에 복음을 전하던 중에 리따를 거쳐 리따의 북서쪽에 있는 야포에도 이른 것이다.

 

'여제자'라고 번역된 '마테트리아'(mathetria)는 '마테테스' (mathetes; '제자')의 여성형으로서 '여성제자'이다사도행전에는 교회에 속한 모든 모두에게 '제자'(사도6,1.2.7; 9,10.19.26; 11,26.29; 13,52)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이 명칭은 반드시 예수님에게서 직접적으로 배운 직속 제자와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주님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이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이다. '타비타'라는 여제자도 주님께 대한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이렇게 불려지고 있었다.

 

특히 '도르카스'(Dorkas)는 선행('에르곤 아가톤'; ergon agathon; doing good)과 자선('엘레에모쉬논'; elleemosynon; helping poor)하는 일을 맡아 주변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모범적인 주님의 제자였다.

 

A.D.1세기경 팔레스티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상당수가 두 개의 이름 즉 아람어(예수님의 모국어)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여제자도 '타비타'라는 아람어 이름과 '도르카스'라는 그리스 이름을 갖고 있었다이것을 보아 그녀는 그리스계 유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름은 둘다 '영양'(羚羊; gazelle)을 뜻하는데영양은 빨리 달리고 품위가 있어 '은혜로움혹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다그녀는 자신의 이런 이름과 뜻과 같이 누구보다도 선행과 자선에 헌신적이었던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방에 눕혀 놓았다.'

 

'씻어'라고 번역된 '루산테스'(lusantes; they had washed)는 '씻다'를 의미하는 '루오'(luo)의 부종(不定과거 분사이다이 '루오'동사는 신약 성경에 5회 등장하는데문자적인 '씻음'(사도9,37; 16,33; 2베드2,22)과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정결'(요한13,10; 히브10,22)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물론 장례 절차로서 염하는 것을 의미하며이것은 또한 타비타가 죽었다는 사실을 의심치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옥상방'으로 번역된 '휘페로오'('hyperoo'; an upper chamber)의 기본형 '휘페로온'(hyperoon)은 '집의 가장 높은 부분','여인들이 물러가 거하는 위층'을 의미하며때때로 지붕 위 평평한 곳에 지어진다.

 

시신을 씻는 것은 장사를 위한 일반적인 관례이지만그것을 옥상방(다락)에 둔 것은 특이한 일이다아마도 장사되기 전까지 시신을 조용한 곳에 두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옥상방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의 일로 널리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에많은 믿는 사람들이 헌신적이었던 그녀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가 내려질 것으로 믿고 미리 예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즉 열왕기 상권 17장 19절에서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의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자기가 머무는 옥상방으로 올라가서 자기 잠자리에 누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열왕기 하권 4장 10절과 21절에 엘리사의 옥상방 이야기가 나오는데수넴 여자가 위로 올라가 하느님의 사람의 침상에 죽은 아이를 눕히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말하자면선행과 자선에 힘썼다가 죽은 타비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사도 베드로에 대해서 구약의 엘리야나 엘리사 예언자처럼 생각하고예언자들의 옥상방에서 일어난 소생 사건이 타비타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사도행전 9장 38절에서 사람들이 사도 베드로를 지체하지 말고 자신들에게 건너와 달라고 다급하고 간절하게 초청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 5월 2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영원한 생명의 말씀>

(요한6,60-69)

우리 자신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60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거북하다(스크레이오스-용납하기 어렵다자신들이 원하는 말씀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말씀을 보이는 문자 그대로 보면 귀에 거슬립니다.

 

(요한6,54.57)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십자가의 대속그 죽음으로 얻는 구원의 약속곧 영원한 생명의 새 계약으로 깨닫게 된다면귀에 거슬리지 않아 떠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육의 생명이 목적이 아닌 영의 생명을 위한 죄의 용서구원이 목적인 신앙인 이라면~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의 선재설(先在說하늘에서 오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에페1,4~참조예수님의 부활 후 승천을믿지 못할 것을 동시에 암시하심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실망하여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그런 그들은 주님께서 일일이 찾아가셔서 구원의 길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예수님이 계시기에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육을 위한 말씀이 아닌 영의 생명을 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1코린15,22.45)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육을 위한 빵자신의 뜻을 위한 말씀을 기대했던 이들은 떠납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인 나에게 이루어 지소서가 아닌 내 뜻을 아버지께서 이루어 지소서를 기도하는 이들이 예수님(말씀)을 떠난 것입니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정말 깨닫고 한 말일까요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 하셨을 때~

 

(마르10,33-37.41)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 수난의 말씀을 듣고도~>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우이의정 죄의정을 청하는 겁니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다른 제자들과 베드로 또한 육을 빵(말씀)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게 되는 하늘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심하게 배반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베드로의 고백은 어찌된 걸까요베드로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마태(16,15-17)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너는 행복하다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생각의지가 아닌 하느님께서 주신 생각이고 의지입니다그 하느님의 의지가 배반자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다윗도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시편139,7-8) 7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8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

하느님은 끝까지 찾아다니시며 끝까지 사랑하십니다하느님은 당신의 나라로 끝까지 끌고 가십니다그 하느님을 믿습니다하느님의 사랑을 믿습니다아멘.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6,60ㄴ-69)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63)

 

여기서 ''에 해당하는 '사륵스'(sarks; flesh)는 기본적으로 ''이라는 뜻이며육체 및 혈육을 가진 인간을 가리키는 데 종종 쓰인다.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하여 하느님을 찾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인간그리스도를 보고서도 지각하지 못하는 어둠에 속한 자들의 행위와 관련되어 있는 ''은 언제든지 죄에 굴복하므로육체가 있는 곳에 언제나 죄가 있다는 것이 사도 바오로의 기본 입장이었다.

 

''이 생명을 주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륵스)은 영적인 측면에서 아무 유익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쓸모가 있다', '유익하다', '돕다', '소용이 되다'에 해당하는 '오펠레이'(ophelei; profits; counts for)는 3인칭 단수 현재 시제인데여기처럼 사물에 대해 쓰일 때에는 '그것은 가치가 있다'(it is of value; it is of avail)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께서는 '오펠레이'(ophelei)를 부정하기 위해 '우크~우덴'(ouk~ouden)이라는 이중 부정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 구원에 전혀 도움이 안됨을 강조하시고 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육체가 원하는 것을 좇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데성경은 ''의 관심사는 죽음이며(로마8,6), ''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른 결과가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경고한다(에페2,3).

즉 ''(사륵스)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주장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 무익함을 죄로 기울여지는 성향을 가진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예수님게서는 인생을 무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가치를 소홀하게 여기는 육적 가치에 치우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설교와 가르침이 매우 특별한 것임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말은'으로 번역된 '레마타'(remata; words)는 '레마'(rema)의 주격 복수로 '말하여진 것들', '예언들', '명령들'로 번역할 수 있는데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말씀들'이다. '레마'(rema)는 기본적으로 '분명하게 말하여진 어떤 것', 즉 진술이나 성명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한'에 해당하는 '에고 렐랄레카'(ego lelaleka; I have spoken)는 말하는 주체를 나타내는 1인칭 대명사 '에고'(ego)를 사용하여 말하는 주체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렐랄레카'(lelaleka)는 '랄레오'(laleo)의 완료 시제로서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 혹은 주장하신 것을 나타낸다따라서 '내가 이미 설교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설교하신 그 말씀들이 '영이며 생명'이라고 단언하신다당신 자신의 말씀 속에 생명의 영과 생명의 능력이 존재함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은 본성적인 죄로 말미암아 그 말씀과 성품이 죄와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생명이며 오직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만 할 수 있는 말씀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10,17)라는 성경의 증거는 그 말씀이 지닌 능력이 어떠한지를 잘 드러낸다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레미타'(remata)가 있는 곳에서는 새 생명의 역사와 영적 갱신이 일어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8절의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에서도 '말씀'은 '로고스'(logos)가 아니라 '레마타'(remata)가 사용된 것을 볼 때이것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며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심을 이해하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