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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아닌 주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 (요한6,60ㄴ-6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4 조회수2,046 추천수0 반대(1) 신고

 


 

2021년 4월 24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우리가 아닌 주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

(요한6,60-69)

60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 거북하다(스크레로스)- 용납하기(관용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예수님은(쉬운 말로)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며 당신의 ‘살과 피에 의해서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참 생명은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자격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주님의 살과 피가 당신의 백성들에게 부어져야 한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제자들과 유대인들, 그리고 그곳에 모인 무리들은 주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보고 그분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도 기적을 일으켜서 자기들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당신이 죽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그러한 죽음을 통해 생명이 주어진다고 하니까,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용납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 주님은 당신의 말씀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가고자하는 방향에 주님의 말씀이 제동장치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의 행진을 위해 주님의 도움을 필요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님이 도와주시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진리라 했던 그 길에 태클을 걸고 들어오신 것이다.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 주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에 속죄 제물로 오셨던(요한3,16) 주님께서 창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곳’ 하늘에 존재하셨던 ‘참 그리스도’ 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예수님의 살, 몸, 피에 관한 모든 말씀이 하늘의 생명을 주는 영이었다는 것이다. 육에 속한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생명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부어짐‘으로만 생명은 살아나게 되는 것으로 참 생명은 영에 속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1코린15,45)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 생명을 주는 영-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이 씀을 믿기만 하면, 그 말씀에 의해 그들에게 생명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이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 안에서 제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밖에서 부터 주어지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 믿지 않는 자들(복수), 팔아 넘길자(단수)로 유다를 뜻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유다는 믿지 않아 끝내 돌아오지 않은 모든 이들의 대표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 새 생명은 성령으로 부터 오는 새 창조의 존재 양식인데(로마8,1-3참조) 죄인이 그 새 창조의 존재 양식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살리시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은혜를 입어야 하는 그 진리의 복음은(요한14,6참조) 하느님께서 創世前 택한 당신의 백성들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에페14참조)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십자가의 대속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거저 의롭게 되었다’ 이 말씀을 믿고 간직하여 받는 구원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 옛 시대의 존재양식, 곧 구약(제사와 윤리)에 의거하여 자신의 생명(힘)을 취하려는 이들은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었기에 떠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이렇게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을 했을까?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실망하여 고기 잡으러 낙향(落鄕)을 했을까? 사실 베드로의 모든 고백은 자신이 아닌 하느님께서 알려 주셨던 것이다.

 

(마태16,16-17)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베드로의 그러한 기특한 고백들은 무엇에 대한 증거이겠는가. 불가능한 베드로를 이끌고 가시는 하느님의 손길의 현존(現存)인 것이다. 따라서 많은 제자들이 떠나고 베드로가 주님곁에 남아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끄심 이었던 것이다.

 

(시편139,7-10) 7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8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 9 제가 새벽놀의 날개를 달아 바다 맨 끝에 자리 잡는다 해도 10 거기에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잡으십니다.

= 다윗이 하느님을 떠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윗이 가는 곳마다 쫓아가신 것이다. 그렇듯이 지금 베드로를 붙들고 있는 것은 오히려 주님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기뜩한 고백을 한 후에도 여전히 육의 욕망에 세상에 힘을 쫓고 세상의 권세(權勢)앞에 벌벌 떨었던, 그러나 그런 그를 주님께서 붙들고 놓지 않으심으로 그가 위대한 使徒로 生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이 성도(聖徒, 하느님백성)는 일단 하느님의 손에 붙들리면 그가 가는 것마다 하느님께서 쫓아다니시기 때문에 어디로 도망갈 수가 없다.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집요함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은총이신 성령님! 생명의 말씀으로 주님께서 저희를 붙들고 계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아멘.

묵상에 도움 주신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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