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4.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5 조회수1,921 추천수5 반대(0) 신고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입니다)

2021년 4월 25일

부활 제4주일

복음 요한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언어가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은

언어의 장벽으로 힘듭니다.

간단한 대화야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외국의 한 성지에서 혼자 있는데

한 외국인이 다가와서 한국인이냐고 묻습니다.

맞다고 하자, ‘나주 성모에 관해 묻는 것입니다.

간단한 대화 이상은 불가능한 저에게

이단에 관한 대화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뒤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에

늘 긴장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대화 나누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는 것입니다.

눈빛손짓 그리고 온몸으로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었지요.

무엇보다도 경청하려는 노력을

서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경청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말이 통하지 않으면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경청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아름답고

의미가 있습니다굳이 심각한 토론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필요한 말을 서로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만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묵상하게 됩니다.

외국인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몸 전체로 집중하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이런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하는 성소주일입니다.

그 부르심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모습과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과의 시선을 맞춰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으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양들보다 자신의 안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삯꾼과 같은 세상의 목소리만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세상이라는 삯꾼은 내가 잘못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자기만 잘 되면 그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지가 분명해집니다.

바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착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주님을

착한 목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이 주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따르는,

자신의 성소를 지키는 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욕심의 반대는 욕심이 없음이 아닌,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입니다(달라이 라마).

자동차와 인생

예전에 지방에 갔다가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빙판길에 제 차가 빙글빙글 돌아서

어느 담벼락에 그대로 충돌한 것입니다.

차는 곧바로 정비소로 향했고,

저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호출했던

보험사 직원은 렌터카를 불러준다고 하는데,

너무 놀라서 과연 운전해서 인천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이 순간정말로 운전하기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대신 운전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또 인천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아서 반드시 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하기 싫어도 운전을 해서

인천에 가야 합니다.

이 운전과 우리의 삶이

비슷하다고 생각해봅니다.

차를 직접 운전해야지만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제 삶도 제가 직접 이끌어야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고통과 시련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망치기만 하면 진짜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힘들어도 해야지만

자신의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입니다.

나만이 운전할 수 있는 나의 삶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내가 원하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성소주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