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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5 조회수1,798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에브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고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1

예루살렘의 사도단만이 아니라 유다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소식을 들었다. 루카는 고르렐리오의 개종 사건을 중대한 전환점으로 선언한다.

 

2

예루살렘은 고원지대에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내려온다.

대부분의 사도 및 일반 사도와는 구별되는 수구파 유다인들은 베드로와 이방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제를 문제삼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행하라는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했던 베드로의 태도와 이 수구파 유다인들의 태도가 대비된다.

 

3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더불어 식사한 사실이 10장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의 지적은 10.48에 암시된 베드로의 고르넬리오 집에서의 체류를 전제로 한 결론으로 보인다. 이방인들과 식탁의 친교를 금지한 이유는, 그들과 음식을 나누게 되면 영적으로도 그들과 교제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그들의 우상숭배에 가담하는 것으로 여겼던 오랜 보수적 전통 때문이다. 이 수구파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의 세례에 대해서는 드러나게 문제삼지 않는다.

 

4

베드로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자신의 올바른 결정을 청중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으로 족하다.

베드로의 설명은 10장을 정확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수정을 곁들인다. 루카가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있는 독자들을 겨냥하여 베드로의 진술에 변화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1절 이하의 야포시의 유다인 그리스도인이 여섯 명이고 고르넬리오의 심부름꾼이 도착했을 때 그들이 이미 베드로와 함께 묵고 있었다는 정보는 새로운 것이다.

 

14절에 베드로가 구원의 말씀을 들려주리라는 천사의 말도 덧붙여진 것이다. 15절에서는 10,44와는 달리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하는 순간에 성령이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11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는 10장의 내용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 루카는 베드로로 하여금 이 두 번째 설교를 예수의 말씀으로 끝맺게 한다.

 

17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준 것은 하느님이 이방인 신도들에게 유다인들과 똑같은 선물, 곧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성령의 세례자 물론 물의 세례보다 훨씬 고차원의 선물이다.

 

18

하느님을 찬양하는 행위는 그분의 업적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구원의 길을 의미한다. 이 길은 이제 유다인이 될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복음<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1

은 목자가 드나들 권한을 상징한다(7절 참조).

다른 데로과 정반대되는 상징적인 말로서 불법을 뜻한다.

강도는 이중적 표현으로서 목자와 정반대되는 의미다.

 

3

목자와 양들의 친밀한 관계가 시사된다.

한 양우리 안에 서로 다른 목자의 양들도 섞여 있음을 시사한다.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부르는 것은 팔레스티나 목자들의 관례다. 여기서는 예수가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돌본다는 생각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4

자기 양들에게 생명의 목초를 주기 위해 초원으로 데려가는 착한 목자의 모습이다.

목자와 양들의 깊은 신뢰가 시사된다. “따라간다는 예수를 추종을, “목소리를 안다는 계시자를 알고 계시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뜻한다.

 

5

목자와 양들의 분리될 수 없는 결속관계에 정반대되는 언급으로서 모든 양이 처한 위험한 상황이 시사된다.

 

6

영적 소경인 바리사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비유는 원어로는 파로이미아인데, 일반적으로 속담을 가리킨다. 신약성서에서 요한복음말고는 2베드2.22에만 나온다. 여러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마살에서 번역된 낱말로 여겨진다. 공관복음에서는 비유란 뜻으로 파라볼레로 번역된다. 파로이미아는 요한복음에서 특히 분명하게 알려주다또는 분명하게 말하다와 대조되어 언급된 대목에서 그 뜻이 잘 시사되어 있다. , 은닉된 말투, 애매한 말투를 가리키는 뜻으로 이른바 수수께끼 같은 비유또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의역할 수 있다.이런 비유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 곧 수수께끼로만 남게 되는 특성을 가진다.

 

바리사이들은 영적으로 소경이기 때문에, 곧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에 예수의 계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 비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은 예수의 양들에 속하지도 않고 그 목소리를 알지도 못한 자들로 입증된다.

 

7

청중이 바리사이들인지 유다인들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제 다시란 표현으로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이 새롭게 보도될 따름이다. 아마도 예수의 이 계시 말씀 자체에 역점이 있을 것이다.

 

8

양들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하나뿐이고 예수가 바로 그 문이라는 뜻이다. 예수만이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목자. 곧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이란 뜻도 함축되어 있다. 예수의 이 자기계시 말씀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 곧 종말론적 구원자로서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

 

예수만이 양들의 목자. 구원자임을 강조한 논박적 표현이다. “도둑과 강도는 메시아로 자처한 자들이나 거짓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문맥상 바리사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당시 유다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양들은 그들의()을 듣지 않습니다가 이를 잘 시사한다.

 

9

양들을 위한 으로서 예수의 유일무이한 역할이 강조된 적극적 관점이다. 양들이 문으로 드나들면서 생명의 목초를 찾아 얻듯이, 사람들은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 자기계시 말씀은 14.6과 맥락을 같이한다. , 예수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생명을 약속한 계시자요 종말론적 구원자로서 계시된다. “목초를 찾아 얻는다는 구약성서적인 표현으로서 구원과 종말론적 축복을 뜻한다.

 

10

도둑과 강도에 대한 논박적 관점과 예수 자신에 대한 적극적 관점이 대조된다. 도둑으로 인해 위협과 멸망과 죽음이 야기되지만, 예수로 인해서는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이 신적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뜻하고 죽음의 세력을 이겨내는 힘을 지민 종말론적 생명을 가리킨다.

 

# 오늘 복음은 목자와 양들 비유입니다. 목자와 양들 비유는 구약성서에도 있습니다. 특히 백성과 지도자의 관계나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추종자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비유만은 아닙니다. 우화가 혼합된 수수께끼 같은 비유로서 예수의 그리스도론적 자기계시 말씀에 연결됩니다. 예수의 이 자기계시는 목자와 양들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우의적 해설입니다. 6절에서 시사되듯이 믿지 않는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닙니다. 믿는 자들은 보게 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소경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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