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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8 조회수1,250 추천수0 반대(0) 신고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정확한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이유 중 하나 속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도 포함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도 영원한 생명이지만, 영원한 생명에만 함몰해서 생각하면 조금은 삭막할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생각이지만 생각의 관점을 조금 다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식에도 음식 재료마다 식감이 있듯이, 언어도 언어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흔히 미묘한 언어의 의미 차이를 일명 뉘앙스라고 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뜻은 모든 사람이 다 잘 아는 속담입니다. 이 의미를 왜곡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어느 세월에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겠는가 하고 말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도 충분히 이해가 가긴 갑니다만 이 말을 역으로 한번 생각해보면 약간 흥미롭기도 합니다. 같은 의미이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태산도 티끌이 모이지 않으면 태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면, 분명 이치에 맞는 말인데도 어감에 차이가 납니다. 그건 티끌을 보느냐, 태산을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입니다.

 

티끌을 보면서 태산을 생각하면 아득한 꿈 같은 말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태산을 보며 그 태산 속에 있는 티끌을 보면, 그 작은 티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티끌이 없으면 태산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를 오늘 복음에 한번 적용하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 명령은, 성부 하느님께서 친히 그 명령이 무엇인지를 성자 하느님이 성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게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결국 그 명령인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이고, 그 뜻이 바로 예수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인데도 왜 굳이 이렇게 에둘러서 표현을 하셨을까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당신 스스로 친히 근본 하느님이시면서도, 저희에게 당신 스스로를 성부 하느님 앞에 몸을 낮추시는 겸손을 가르치시는 뜻도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감히 해봅니다. 그분의 명령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분의 명령은 딱 하나 아니겠습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일 겁니다. 그 사랑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하느님처럼 거룩한 몸이 되는 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작은 사랑의 실천 하나하나가 티끌이 되어 태산을 이룰 때, 그 사랑이 태산 같은 사랑을 이룰 때, 예수님의 명령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거창한 말만을 보면 그 길이 요원하기만 할 수가 있을 수 있지만, 역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사랑에 관심과 애정을 쏟다보면, 언젠가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그게 하느님 사랑으로 흠뻑 젖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 추기경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 속에 추기경님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다시 한 번 더 간절히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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