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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유언장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8 조회수1,405 추천수0 반대(0) 신고

 

어제 보도를 통해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추기경님을 잘 모릅니다. 추기경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추기경님께서 지으신 책 몇 권을 본 게 고작입니다. 많은 저작물이 있지만, 그 몇 권을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오랜 세월 번역을 하셔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번역물 외에도 문장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정갈하다는 걸 항상 느낍니다. 책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만 추기경님의 책을 접할 때면 가능하면 구입해서 읽으려고 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분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과 유튜브로 다양한 자료를 봤습니다. 여러 가지 인상적인 내용이 있습니다만 한 가지 제 마음속에 인상을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복사를 설 때 집과 성당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복사를 설 수 있었던 모습이 제 마음에 하나의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하느님께서 그 성실함을 보시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떡잎을 키운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향년 90세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50세입니다. 사람은 언제 하느님 앞에 갈지 모릅니다. 오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추기경님을 기준으로 해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앞으로 이제 40년 남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40년을 생각해보면 긴 것 같아도 결코 길지 않은 세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영세를 받은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됩니다. 잘 아는 형제님이 계십니다. 67세입니다. 그 형제님이 초기에 성당 앞에서 신영세자 신영세자라고 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보면 긴 세월 같지만 지나고 보면 금방입니다. 제가 95년도에 노량진에 잠시 살았습니다. 선배가 노량진에 살았는데 그때 같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몇 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날이 광복절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모님 대축일이네요. 그땐 신자가 아니였습니다. 그날 광복 5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63빌딩 건물을 배경으로 해서 레이져쇼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서울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건물만 봤지만 아마 노량진 성당일 겁니다. 성당을 지나서 김영삼 대통령 사저가 있는 쪽으로 산책을 하러 가다가 장승백이 언덕에서 봤습니다. 그게 불과 25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랑 제가 영세를 받은 시점과 차이는 15년이 나지만 15년의 차이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지나고 보면 지나온 세월이 금방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시도를 했다가 하지 않은 게 있었습니다. 유언장을 쓰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서 언제 작성했다가 그건 불에 태웠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추기경님 선종 소식을 듣고 다시 유언장을 쓰려고 합니다. 유언장을 쓰려고 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살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한 것도 있지만, 실제 유언장을 남긴 사람들의 경험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호스피스 관련 봉사를 하면서 들었습니다.

 

실제 어떤 분이 남긴 유언장을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제가 거절했습니다. 제가 남의 유언장을 본다는 게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있은 후에 그분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왜 저에게 유언장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말입니다. 저는 남의 비밀을 아는 것 같아서 거절을 처음엔 했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유언장을 만약 보게 되면, 앞으로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언장을 읽어보게 된 것입니다. 그건 그분이 하나는 봉인을 해서 자녀에게 남겼고, 하나는 자신의 병상에 복사본을 보관하셨던 것입니다. 유언장은 침대 시트 밑에 보관하셨던 것입니다. 약 한 달을 고민해서 작성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그 유언장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 유언장은 일반적인 그런 유언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유언이 아니였습니다. 자기가 자신 스스로에게 남기는 유언이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유언이었던 셈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인생을 잘못 살은 내용에 대해 일종의 후회와 한이었습니다. A4용지 한 장의 유언장이었는데 그걸 읽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게 벌써 22년 전 일입니다. 그 유언장 내용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분은 종교가 없었던 분입니다. 세상은 성실하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말년에 와서 병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의 도움으로 생명을 의지해 살아가면서 깨우친 깨달음이었던 것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살기까지는 병은 걸렸어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며 후회 없이 살다가 생을 마감할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병동에서 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인생을 잘못 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건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걸 죽음에 임박해서 알았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만약 신이 1년만의 시간을 건강한 시간으로 살 수 있게 허락한다면, 1년만이라도 열심히 남을 위해 한번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남긴 한 장의 유언장이 저에게는 엄청난 삶의 교훈을 남겨줬던 것입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태어난 이상,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또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훌륭한 삶이 아니고, 한 인간의 삶 자체가 숭고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유언장을 본 후 6개월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그분의 유언장을 본 후에 그날 제 일기장에 무려 10페이지 분량의 일기를 남겼습니다. 제 인생의 엄청난 교훈을 주는 유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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