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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4주간 금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29 조회수1,340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님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로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26

이 구절의 머리에 나오는 형제 여러분은 더 친숙한 표현으로서 이 연설문의 처음에 등장하는 더 공식적인 표현인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을 대치한다. “구원의 말씀은 예수를 통해 선포된 평화의 복음이다. “우리는 팔레스티나 유다인들과 대칭되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이스라엘인들과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27

27-39절에서는 바오로는 원래 베드로의 선교설교들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내용을 다소 길게 소개한다. 예수사건을 둘러싸고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지도자들은 하느님과 전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성서에 예언되어 있는데도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다. 그들의 태도는 예언자들의 예언을 성취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살리고 그를 통해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다. 이제 그를 믿는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의롭게 될 것이다. 위의 내용은 고르넬리오 집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28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29

그분에 관해 기룩된 대로는 루카 22.37에서 당신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의 말씀과 매우 흡사하다. 이 구절의 묘사대로라면 예수를 없애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한 똑같은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장사지낸 것으로 본다. 이는 루카 23.52의 기록과 상반된다. 29절 본문의 동사가 복수 3인칭으로 되어 있는데 루카 12.20에서처럼 수동형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곧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져서 무덤에 안장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예수를 처형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그분을 장사지냈던 사람들은 동일인이 아닐 수있게 된다.

 

31

1.3에는 예수께서 나타나신 기간을 40일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힌다.

 

33

시편 2.7에서 인용한 이 시편의 첫 부분은 이미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대목에 나온다(루카 3.22).

 

 

 

복음<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1

유다의 배신 예고와 함께 예수의 이별 예고와 베드로의 부인 예고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이 이미 산란해졌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을 도와 침착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고자 한다.

 

제자들은 산란한 마음으로 인해 믿음까지 저버릴 위험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예수는 확고한 믿음을 당부한다. 침착한 마음을 가지도록 믿음을 강화시켜 확신을 가지게 한다. 요한복음에는 믿음이란 명사는 전혀 없고 믿는다란 동사만 사용되는데 예수의 계시에 응답하는 기본적인 인간 자세를 가리킨다.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응답. 굳건한 신뢰. 내적 평화와 마음의 안정을 뜻한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예수께 대한 믿음에 직결되는 것은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예수께 믿음도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 대한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일치된 하나인 믿음이다. 예수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2

묵시문학적 천상세계관이 내 아버지의 집이란 표현과 더불어 그리스도교적 관점으로 언급된 내용이다. 특히 거처할 곳이 많다란 말은 천상세계의 질적 다양성(높고 낮음의 순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염두에 둔 양적 충분성을 시사한다. 제자들. 즉 하느님과 예수를 믿는 자들이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이란 말은 비유적 표현으로서 예수와 그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하느님과의 일치된 공동체를 시사한다. 바로 이 공동체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11,25-26)

 

제자들에게 확신으로 심어주는 말로서 예수가 떠나간다는 데 역점이 있고 그 목적도 함께 시사된다. 예수가 떠나간다는 것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가리키고 예수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이 천상세계에서 거처할 자리가 마련된다.

 

3

표현은 초대교회 재림사상과 흡사하나 내용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가 부활 이후에 영적으로 와서 함께 머무는 현존을 뜻한다. “예수가 있는 곳에 제자들도 있게 된다는 말은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일치를 이룸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여러분을 내게로 데려온다란 새로운 실존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예수의 부활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일은 예수 부활 이후 이미 믿음의 실존에서 시작되고 각 개인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완성된다. 따라서 예수가 떠나감으로써 제자들만이 홀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재림 때 비로소 이루어질 사건으로서 예수가 다시 온다고 언급된 것도 아니다.

 

4

예수가 떠나가는 길의 목적지가 이미 제자들에게 알려져 있음을 뜻하고, 그 길이 또한 제자들이 가는 임을 암시한다. 일부 고대 사본에는 여러분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길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5

일종의 이의제기로서 제자들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6

예수의 자기계시다. “나는 길입니다에 역점이 있다. 예수는 아버지를 계시하기 때문에 이다 진리요 생명입니다란 말은 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설명한다. 예수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현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자기를 믿는 자 모두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임을 뜻한다. 이 계시는 나는 문입니다라는 계시 말씀과 맥락을 같이한다.

 

의 목적지가 아버지로 시사된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유일무이한데, 이 바로 예수 자신이라는 말이다. 이 말로 인해 로서 자기 자신을 계시한 예수의 말이 더욱 완전하게 표현된다. 오로지 예수 안에서 아버지를 알 수 있고 또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계시에 근거한 요한복음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최고봉이요 요약이다.

 

#.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신 예수

오늘 복음 대목은 고별담화의 일부로서 예수가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리면서 그들을 위로하는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예수의 자기계시와 제자들의 실존에 관한 언급이 전개된다. 이런 맥락 가운데 특히 제자들에 대한 약속과 함께 믿음을 가지도록 촉구하는 말이 강조된다. 즉 예수는 지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확고한 믿음의 상태로 무장시키고자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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