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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동자 성 요셉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30 조회수862 추천수0 반대(0) 신고

노동자 성 요셉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아버지다. 목수로 일한 성인은 오늘날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1독서 콜로 3,14-15,17,23-24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23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24 주님에게서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은 주 그리스도의 종이 되십시오.

 

1독서 주해

14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은 직역하면 완전함”.

사랑을 완전성에 도달하는 덕목으로 꼽는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완덕으로 나아간다.

 

15

이어지는 권고는 3인칭 명령형이며 15절과 16ㄱ절이 병행을 이룬다. 여기 2그리스도의의 주체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평화와 말씀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브라뷰오(“다스리다. 지배하다”)는 동사는 신약성서에서 이곳에만 한 번 나온다. 본디 경기때 심판을 보다. 기본 계획이나 방향을 제시하다. 결정하다. 이끌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표명하는 근본 개념이며 그 표제로 이해된다.

 

교회론적 표현이다. 곧 개별적인 수덕의 길을 제시하지 않고 한 몸인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하기를 강조한다. 저자는 한 몸이란 표현을 통해 앞서 12-14절에서 제시한 근본적인 덕행의 길을 걷도록 종용한다.

 

짧은 콜로새서에서 네 차례나 감사하라고 말한다. 이같이 감사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 의무는 구원사건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다. 세례받은 이가 자신이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17

17절은 전례문인데, 골자는 후반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의 모든 행위를 결정짓는 근본 잣대다.

아버지로서의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 자신 내지 그리스도 사건이다. 1,12-14에서 저자는 신앙인과 그리스도에 대해 하느님이 왜 또 이렇게 아버지가 되시는지 그 상관관계를 밝혔다.

 

23

이로써 저자는 사회구조나 제도의 변화를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이미 주어진 제도를 확고히 다지고자 한다. 종들에게 마치 주님을 위해 하듯이그렇게 세속 주인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촉구한다.

 

24

주종관계 사회제도를 그리스도와 결부지어 정당화한다.

 

 

 

복음<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리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난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55

마르 6.3에선 예수님을 장인이라고 했는데, 마태오는 장인의 아들이라고 고쳐썼다. 마태오의 개작 영향으로 흔히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장인 또는 목수였다고 생각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요셉을 노동자들의 주보성인으로 모신다.

 

58

마르 6.5에선 아무런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는 양 오해할세라 마태오는 많은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다고 고쳐썼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제가 어렸을적 모든 가정이 다그랬지만 쌀밥을 먹으면 너무나 맛있어서 좀더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보리밥이라도 충분히 먹으면 그날은 신나게 놀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만큼 경제적 사정이 않좋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희 가정은 그보다 더 땅 한평도 없어서 아버지께서 막노동을 하여서 자식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어떻게 사는가 하는 학생들의 가정조사에 아버지 직업란에 무엇이라고 써야하나?’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막노동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어찌나 챙피하던지요. 다른 친구들은 농업이라고 다들 쓰는데 막노동이라고 쓰니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라자 노동은 북한에서는 노동자란 말들을 많이 사용하니 노동자는 북한에서나 있는 것이야. 공산주의자들은 다 그래. 특히 노동자란 말은 북한에서나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크자 아버지의 말씀은 너희들 굶게 하지는 않았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어른이 되어 돌이켜 보니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죽어라고 매일 일하러 가시고 어머니도 일을 매일 하시는데....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였겠습니까? 그래서 일을 안해서 가난하다고 하는 말들이 틀렸음을 알았고 노동은 정말 신성한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의 본명 베네딕토 성인도 노동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 요셉 성인도 노동으로서 가정을 이끌어갔습니다. 일반 막노동은 아닌 목수였지만 노동자의 모범이셨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나는 삼겹살이 먹고 싶으면 대패 삼겹살을 먹습니다. 목수가 일을 할 때 나오는 대패가 생각이 나서입니다. 같이 먹는 사람도 좋아하니 나 또한 더욱 좋습니다.

요셉 성인께서는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와 함께 사셨으며 노동으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셨으니 참으로 우리들의 가정의 수호자이시며 노동자들의 모범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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