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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03 조회수2,252 추천수10 반대(0)

마이클 셀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 그는 능력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가난과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부익부와 빈익빈을 인정하는 논리입니다. 대부분의 재화를 상위의 소수의 사람이 독점해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근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이클 셀던은 이와 같은 능력주의는 기독교 윤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기독교는 상선벌악의 신학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 성공한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미국이 위대한 것은 미국이 선하고, 정의로운 편에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재난과 고통은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회정의가 없는 긍정의 신학, 번영의 신학에 근거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긍정과 번영의 신학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와, 병든 이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이 아픔을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그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라자로는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평생 부유하게 살다가 지옥에 가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이를 도와주라는 가르침입니다. 라자로는 비록 가난하지만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이를 도우면서 하느님 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능력주의를 말씀하시 않으셨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 위해서 였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박해를 받아들이고, 순교하였던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상선벌악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가 요구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욥처럼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때 감사했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실지라도 감사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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