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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5주간 수요일] 포도나무와 가지 (요한15,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05 조회수2,088 추천수1 반대(1) 신고

 

2021년 5월 5일 수요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포도나무와 가지 (요한15,1-8)

   

 

1독서<할례 문제 때문에> (사도15,1-6)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알렐루야.

○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나는 몹시 기뻤노라예루살렘아네 성문에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견고하게 세워졌네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그곳에 심판의 왕좌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복음<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15,1-6)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1-2)

 

사도행전 15장은 사도행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교회사 전체에 있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당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하게 대두된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사도들과 원로들이 역사상 최초의 그리스도교 종교회의인 예루살렘 공의회를 열게 되었다.

 

사도행전 저자가 이 사건을 특히 바오로의 제1차 이방 선교 여행을 기록한 13장과 14장 직후에 기록한 것도 의의가 있다.

바오로의 선교를 통해 믿은 그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그외의 것 즉 유다인의 전통과 같은 것은 구원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제1차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기까지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보이며그 개최시기는 A.D.49년경으로 추정된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1)

 

여기에서 '관습에 따라'로 번역된 단어는 '에테이'(ethei)이다이 단어의 원형 '에토스'(ethos)는 성문 율법을 가리키는 '노모스'(nomos)와 달리 법적인 구속력이 없이 사람들의 관습과 관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들 유다인들이 '노모스'라는 단어를 쓰지않고, '에토스'라는 단어를 쓴 것은 할례라는 행위가 십계명 같은 곳에 법조문으로 명백히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하느님께서 제정하셔서(창세17,10-14) 유다인들이 계약 백성의 표시로 전통적으로 행해 오고 있는 관례이기 때문이다.

 

사실 할례가 유다인들에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할례를 받지 않으면 계약 백성에서 끊어지기 때문이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곧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지 않은 자그 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가야 한다그는 내 계약을 깨뜨린 자다." (창세17,14)

 

그러나 이런 할례는 하느님의 계약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 표시일 뿐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절대 조건은 될 수 없다.

따라서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게 된(로마1,17) 이방인들의 경우 할례의 과정이 필요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편협한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이 유다인들은 방편적으로 주어진 계약의 표징을 절대시하여 이방인들이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유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으로 자유롭게 하신 자들을 다시 종의 멍에로 얽어 매는 것이었으며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무익하게 하는 것이었다(갈라5,1-2).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1)

 

'구원을 받을'로 번역된 '소테나이'(sothenai)는 원형 '소조'(sozo)의 부정(不定; Indefinite) 과거 수동태 부정사이다사실 '소조'는 죽음이나 위험이나 병 등에 놓임을 받은 때에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러나 본절에서처럼 부정 과거 수동태 부정사로 쓰인 경우는 성경에서 본절에서 말고 7번 나오는데모두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나타내는 데에만 쓰였다따라서 본절에 나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성혈의 능력을 거부하는 것이며 반 그리스도적인 주장이 되는 것이다.

 

한편 '~수 없습니다'로 번역된 '뒤나스테'(dynasthe)는 현재 직설법이다구원을 받는 것이 장차 결정될 미래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어 ''(u)와 더불어 현재형으로 쓰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너무나 확실하게 주장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확신에 찬 어조로 할례받음과 구원을조건과 결과로 규정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릇된 주장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다인 출신의 개종자들의 주장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고 돌아와 안티오키아에 머물러 있던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충격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이제 막 출범하기 시작한 이방인 교회의 정체성을 흔들고 유다주의로 회귀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그런 주장이 안티오키아 교회 내에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수 없었고 할례를 찬성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 사이에 분쟁과 논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방인 할례에 관한 문제가 안티오키아 교회 자체에서 해결되지 않아 안티오키아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및 다른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형제들이 하였다(작정하였다)'로 번역된 '에탁산'(etaksan)이 '결정하다'는 뜻이 있는 '탓소'(tasso)의 3인칭 복수 부정(不定과거형이란 점에서 잘 보여진다.

즉 이 단어에는 교회의 회중들이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뉘앙스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예루살렘 모교회가 모든 교회의 모체로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있어 교리적인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기에 적합하다고 여겼으며또한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의 의견을 듣기에도 용이했기 때문에 내려졌을 것이다.

 

또한 '올라가기로'로 번역된 '아나바이네인'(anabainein)은 '올려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나바이노'(anabaino)의 부정사로서 '올려보낼 것을'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이 안티오키아보다 고지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을 높이 표현하는 당시 보편적인 어법 때문이기도 하다.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15,1-8)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요한복음 15장의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사랑과 인내에 대한 교훈이 주어지는 내용들은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17장까지 전개되는 성주간 목요일 밤에 주어진 다락방 이별의 담화의 일부이다.

특히 요한복음 15장 1~11절은 예수님 당신 자신이 육신적으로는 비록 제자들과 떨어지게 될 것이지만영적으로는 하나의 일치된 유기체이심을 보여 주는그 유명한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이다이것은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예수님과 영적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믿는 이들의 상태를 보여 주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포도나무요'라고 하실 때, ''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인 이스라엘과 참포도나무이신 당신 자신을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팔레스티나의 특산물이며 매우 흔한 식물이기도 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구약시대 때부터 이스라엘은 주님의 포도나무혹은 주님의 포도밭으로 비유되어 있다그들은 주님의 포도밭(이사5,1~7)이었고주님께서 심으신 좋은 포도나무였으며 (예레2,21),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였다(호세10,1).

하느님께서 이 포도나무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팔레스티나에 심으셨다는 시편 저자의 노래(시편80,9)에서 볼 수 있듯이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이었다마카베오 시대의 화폐에 이스라엘이 포도나무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과 포도나무를 일치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당신 자신이 '참포도나무', '참된 포도나무'라고 주장하심으로써동시에 가짜혹은 불완전한 포도나무와의 구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으로 번역된 '알레티네'(alethine; true)의 원형 '알레티노스'(alethinos)는 가짜 혹은 불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프슈데스'(pseudes; pseudo)의 반대로서 '진짜', '순수한', '이상적인'등을 뜻한다.

 

그렇다면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 내포된 당시 이스라엘의 실상은 무엇인가그들은 가짜혹은 최소한 불완전한 포도나무라는 것이다성경은 주님의 포도밭으로 지칭되는 이스라엘이 열매가 없는형편없는 포도나무들포도 나무라고 말한다(이사5,2).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주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불완전한 포도나무였던 것이다.

 

구약에서는 포도나무의 상징이 언제나 타락의 개념과 함께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하고 있는 주님의 포도밭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은 포도밭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사16,10).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야생의 낯선 들포도나무로 퇴화되었다고 탄식한다(예레2,21). 호세아 예언자도 헛된 포도나무라고 외쳤다(호세10,1).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칭하신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즉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 없는 포도나무라는 사실이다유대인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마태3,7~10참조).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도 민족혹은 혈통가문으로 만나시지 않는다오로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서 개별적으로 만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로마2,28.29).

하느님의 약속을 상속으로 계승하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영적 이스라엘뿐이다(갈라3,7.9). 따라서 모든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머무를 때에만희망있는 삶을 살 수 있다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열매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만 맺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심오한 진리를 선포하시기 위해먼저 당신만이 유일한 참 포도나무임을 선포하신 것이다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밝히신 후에성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밝히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을 지칭하신 '나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호 파테르 무' (ho pater mou; my Father)라는 호칭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다왜냐하면본질적으로 독생성자 예수님만이 성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시기 때문이다따라서 여기서 '나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성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그리고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농부'로 비유되고 계신다.

 

'농부'에 해당하는 '게오르고스'(georgos; gardener; husbandman)의 기본적인 의미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으로서신약성경에서는 '농부'(2티모2,6), '포도밭 주인'(포도밭지기)(마태21,33~35) 등을 가리켜서 사용되었다여기서는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관리인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도 하느님께서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일치한 가지인 참된 믿는 이들을 더 나은 축복으로 인도하시고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으로서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을 세밀히 관리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한편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비유하시고성부 하느님을 농부로 비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곳 팔레스티나의 주요 농작물 가운데 하나인 포도 재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동시에 이 가르침이 주어졌던 당시의 장소가 성체성사가 이루어진 마르코의 다락방이었다고 할 경우에제자들 앞에 '아직 남아 있는 과월절 만찬용 포도주'를 바라보면서 이 가르침이 주어졌다는 것은제자들이 잘 알고 있던 친숙한 소재를 사용한 놀라움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나는 참포도나무(십자나무)

우리의 힘은 구원의 능력이 없으니 그 힘 끊어버립니다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그 나의 버림그 부인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쳐 내시고~를 잘라버리시는버림으로 알아듣는다면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요한12,47) = 이 구원의 말씀과 충돌합니다.

2절에 다 쳐내시고’(헬라어-아이로)- 가지를 들어 올리다입니다햇빛을 잘 받아 열매를 잘 맺도록 깨끗이(카다이로가지치기를 의미합니다.

역시 열매를 잘 맺도록그리고 그 카다이로가 3절에 깨끗하게(카다로이)와 같은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그 모두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한 농부의 손길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 가지를 높이 들어오려 열매를 맺게하시고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치기를 해 준다.’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내 본성의 자리에서 들어 올려짐이그리고 그 가지가 잘려지는 아픔이 있어도 참고 붙어있어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손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붙어있기 위한 힘은죄인인 나와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께서 나무로 땅으로 내려오신 그 신의 자리의 버림죽음그 사랑을 깨닫는 그 깨달음입니다.(탈출15,25참조)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예수님의 뜻 안에서 청하라~입니다참 포도나무의 뜻은 그 나무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가지의 들어 올려짐과 가지치기그 사건들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깨달아 받을 수 있도록 이끄실 보호자 성령을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이끄심보호하심으로 깨닫고 믿고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하늘의 생명입니다.

 

(요한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그 자기 의로움의 길을 버리는그 자리에서 들어 올리심이잘라내심이 맞습니다하는 그 자기 부인으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 외 아드님을 포도나무로 이 세상에 내주시어 죄인들을 접 붙이시어 하늘의 존재로 살려 내시는~

 

(요한3,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그 하느님의 뜻그 일이 참 의로움이며 하느님만이 의로우신 분임을 고백 드리는 것입니다.

그 영광 드림을 위해 인간의 희생사랑의로움은 개짐(쓰레기)일 뿐임을 인정하는(이사64,5) 그 자기 부인으로 구원의하늘의 의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바2,3) 주님을 찾아라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의로움을 찾아라겸손함을 찾아라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16,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참 포도나무십자 나무 입니다자기 버림자기 부인의 그 열매로 얻는 포도나무의 생명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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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복음(요한15,1~8)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3~4)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당신 자신을 포도나무로성부 하느님을 농부로 비유하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2절에서 그 관심을 당신 자신과 일치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돌리신다즉 이 비유의 최종적인 관심인 열매를 맺어야 할 가지에 대해 언급하신다.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에 해당하는 '아이레이'(airei; He cuts off; He takes away)는 '아이로'(airo)의 3인칭 단수 현재 시제이며여기서 현재 시제는 변함없는 진리를 나타낸다이 동사는 '치우다', '없이 하다', '제거하다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그렇다면제거해야 할 대상즉 '이것을'(새 성경에서는 번역을 안했음)에 해당하는 '아우토'(auto)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이다'이다그런데, '내 안에 있으면서도('엔 에모이'; en emoi'; in me)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가?

 

첫째는 유대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구원사의 주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포도나무였다그들은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자신들 가운데 보내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불행하게도 그들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열매를 내지 못하는 무익한 가지처럼 되어 버리고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거부한 그들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본래의 가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면아마 그대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로마11,21)

 

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자신들에게만 하느님의 약속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나사실은 전혀 달랐다.

껍데기 유대인이 아니라 참된 유대인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갈라3,7.9)

 

둘째는 껍데기 그리스도인즉 실천(행함행실)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예수님 안에 있다고 여기고 믿음이 있음을 자랑하면서실천이 없는 이들은 실상 믿음이 없는 자이며(야고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에 참여하지 못한다.

 

믿음은 실천을 통해서만 증거된다입술 안의 고백은 믿음의 잣대가 될 수 없다.

말만 신자무늬만 신자는 하느님의 사람들이 아니며믿음의 생활은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회색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열매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요한복음 15장 2절은 원문을 보면쉼표가 있는 두 가지 다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앞과 뒤의 두 문장이 내용상 대조를 이룬다여기서 '깨끗이 손질하시어'(깨끗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카타리레이'(katharirei; He prunes)는 앞의 '다 쳐내시고'에 해당하는 '아이레이'(airei; He takes way) 와는 다른 동사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15장 3절에 나오는 '깨끗하게'에 해당하는 '카타로이'(katharoi)와 같은 어근이다.

요한복음 15장 2절의 전반절은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써 쳐냄을 당하는 (잘리어 지는비참한 가지에 대한 언급을 한 반면에요한복음 15장 2절의 후반절은 반대로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 정결케 하는 가지에 대한 언급을 했다.

 

한편, '깨끗이 손질하시어'에 해당하는 '카타리레이'(katharirei)는 '카타이로'(kathairo)의 3인칭 단수 현재 시제이며물리적인 의미 뿐 아니라 도덕적종교적으로 '깨끗하게 하다'는 의미를 전달한다이것은 가지로 하여금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하느님께서 취하시는 조치를 말한다.

포도밭 주인(포도밭지기)이 열매 맺는 가지들을 잘 손질해 주듯이하느님께서도 열매맺는 자녀들에게 더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신다.

 

사실 이 단어의 의미가 문자적으로 나무를 다듬거나 가지치기를 의미하고영적으로 심신 정화를 의미한다면이러한 깨끗하게 하는 과정이 때로는 고난이나 시련일 수 있다.

'형제 여러분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야고1,2~4)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3)

 

이것은 이미 깨끗하게 된 상태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화(義化; justification)의 상태를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이 요한복음 15장 1~2절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선포해온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말하는데이 모든 말씀들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어 의로움의 상태가 되었다는 말이다.

반면에앞의 요한복음 15장 2절은 이렇게 의화(義化)된 이후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말하는데성화(聖化)의 삶이 필요하고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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