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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15,9-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06 조회수1,68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5월 6일 목요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15,9-11)

2021년 5월 6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1독서<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사도15,7-21)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96(95),1-2.2-3.10(◎ 참조)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을 전하여라◎ 알렐루야.

○ 주님께 노래하여라새로운 노래주님께 노래하여라온 세상아주님께 노래하여라그 이름 찬미하여라

○ 나날이 선포하여라그분의 구원을전하여라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복음<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15,9-11)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5월 10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사도15,7-21)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사도15,7-21)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 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6-18)

 

야고보 사도는 구약 70인역(LXX)을 인용한 듯 보이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즉 70인역 성경의 아모스 9장 11절에는 '그 뒤에'라는 말이 없고, '그 날에'라는 표현이 있다.

아모스 9장 11절의 '그 날'은 단수로서 어느 한 날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메시아가 오시는 날 즉 심판과 구원의 날을 말한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그 날에'라고 하지 않고, '그 뒤에' 즉 '메타 타우타'(meta tauta; after this) 라고 하였다. 야고보 사도는 '그 날에'란 표현을, 메시아의 날에 대하여, 구약의 예언자가  미래의 날로 본 것으로 해석하여 '그 뒤에'라고 풀어 인용하므로, 큰 문제는 없다.

 

한편 '나는 돌아와'라는 구절도 아모스 9장 11절에는 없다.

여기에 해당하는 '아나스트렙소'(anastrepso)는 '내가 돌아올 것이다'(I will return)는 뜻으로서, 이미 버렸던 자들로 생각되었던 자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하느님께서는 남부 유다를 바빌로니아에게 포로로 넘겨주심으로 버리셨다.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이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왔을 때에도, 왕도 허락하시지 않으셨고, 예수님이 강생하실 때까지 약 400여년 동안 예언자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여기서 다시 돌아 온다는 것은, 그 백성에게 메시아가 도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을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 (아모 9,11-12)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16)

 

'무너진 다윗의 초막'에서 '초막'에 해당하는 '스케넨'(skenen)는 '성막'(tabernacle)이 아니라 '천막'(tent)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다윗의 초막이란 성전이나 성소가 아니라, 그가 통치하는 보좌를 상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오셔서 그 무너졌던 다윗의 보좌를 다시 짓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목할 사항이 있다.

요한 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사셨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에스케노센'(eskenosen)으로 '천막을 치다'라는 의미의 동사 '스케노오'(skenoo)의 부정(不定;Indefinite) 과거형이다.

즉 무너진 다윗의 '스케네'(skene)  즉 '초막'(천막)을 다시 지을 분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스케노오', 즉 거하신(사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정치적 왕권을 다시 세우는 분이 아니라, 영적 나라를 다시 세우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고(1사무13,14 ;사도13,22), 다윗이후 남부 유다에서 몇몇 왕이 그 길로 행하였으나(1열왕15,11),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그 길로 행하지 않아,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는 하느님에 의해 심판을 받았고, 다윗의 정치적 왕국은 물론 그 영적나라까지도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즉 다윗처럼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끊겼던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심으로서, 영적인 의미에서의 다윗의 초막을 다시 세우셨다.

따라서 본 문구는 그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메시아로서,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새로운 나라, 즉 신약 시대의 교회를 세우셨던 것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17)

 

본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아모스 9장 12절의 내용을 히브리어 마쏘라 텍스트가 아닌 희랍어 70인역(LXX)에서 인용한다.

 

마쏘라 텍스트와 70인역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차이점 있다.

1)'에돔의 남은 자들'이 70인역에는 '나머지 다른 사람들'(그 남은 사람들)로 바뀌었다.

2)'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기업을 얻게 하리라)가 70인역에는 '주님을 찾게 되리라'로 바뀌었다.

3)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민족들(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소유하게 될 기업인데,    70인역에서는 그들이 주님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리하면, 마쏘라 텍스트는 유대인이 중심이며, 메시아의 나라가 도래하면 그들이 이방인을 기업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반면에, 70인역은 이방인 중심이며 메시아의 나라가 도래하면 그들이 유대인의 하느님으로만 인식되어 왔던 그 하느님을  찾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바로 이방인 중심으로 말하는 70인역을 인용함으로써, 이방인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나머지 다른 사람들'(그 남은 사람들) 구약의 '남은자'(the remant) 개념을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구원에 대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 인간의 패역무도와 죄악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신실한 소수의 의인을 남겨 두셨는데, 이런 자들이 바로 '남은자'이다.(2 열왕19,31 ; 이사37,32 ; 46,3 ; 에제31,7)

 

본문에서는, 유대인 가운데에서 남은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신 메시아를 알아 보고 환영한 세례자 요한이나, 안나, 시메온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 당대의 남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고 환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오신 메시아를 환영하며 찾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뿐 만이 아니라는데 본절의 강조점이 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0)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격인 야고보 사도가 할례와 율법 문제로 이방인을 괴롭히지 말고 다만 4가지 사항만을 이방인 신도들이 최소의 의무 조항으로 지키도록 제안한다.

 

이 4가지들은 모두 당시 유대인 신자들은 율법상 절대적으로 금하는 것인 동시에, 이방인 신도들은 관습적으로 죄책감없이 행하는 것들이었다.

 

먼저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오는 '알리스게마톤'(alisgemayon ; 더러운 것)이라는 단어인데, 이교의 우상에게 바치는 데 사용되던 고기와 같은 제물을 뜻한다.(사도15,29 ; 21,25 참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을 어떻게든 우상과 접촉함으로 그 우상을 숭배하게 되거나(묵시2,14.20), 그 제물을 먹음으로써 마음이 우상에게로 기울어질 수도 있는 관계로 금지되었다.

 

이방인들은 특별히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 때일지라도, 연회나 축하연을 할 때  우상의 신전을 사용하는 일이 있었으며,그것이 자연스럽게 우상과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불륜'(음행 ;phorneias ;포르네이아스)역시 우상숭배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이교도의 우상 신전에는 흔히 신전 창기들이 있어서, 우상 숭배가 음행으로 연결되곤 했다.

그러나 본문의 불륜은, 신전에서의 음행 뿐 아니라 일상에서 행해지던 각종 음란과 성적 방종을 다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마태15,19 ; 1코린5,1)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목졸라 죽인'으로 번역된 '프닉투'(pniktu)의 원형 '프닉토스'(pniktos)는  피를 흘리지 않고 교살되어 질식해 죽임당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몰졸라 죽인 짐승을 멀리하라는 것은, 피가 빠지지 않은 고기를 그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이다. (창세 9,4 ; 레위17,10-14)

 

이는 구약 성경에 규정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엄격히 지켜오던 규례였다.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레위17,10-14)

 

한편 '멀리 하라고' 번역된 '아페케스다이'(apechesthai)는 '억제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페코'(apecho)의 부정사 현재형으로서 '늘 억제하도록'이라는 의미이다.

 

이상의 4가지는 이방인 신도들에게 강제적으로 금한 것은 아니다. 다만 유대인의 율법과 이방인의 관습이 완전히 조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서로간의 원활한 친교와 신앙의 덕을 세우기 위해 자제해 줄 것을 권면한 것이다.



2010년 5월 6일 목요일 [(백)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복음(요한15,9~1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9)

 

요한 복음 15장 9절에는 두 가지의 사랑이 소개된다.

성부 하느님의 성자에 대한 사랑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여기서 앞에 나오는 성부 하느님의 성자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의 모델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처럼'으로 번역된 '카토스'(kathos; as)라는 비교를 나타내는 접속사에서 잘 드러난다. '카토스'(kathos)는 '마치~같이'로 번역되어 사랑의 방법을 나타낸다.

 

하지만, 때로는 '~만큼'으로 번역되어 양(量)의 정도를 나타내기도 하고, '~인 까닭에'로 번역되어 이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다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동일한 방법, 그리고 동일한 정도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셨으므로, 성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사랑하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에 있는 신적(神的)인 사랑이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한 복음 15장 9절에서 두 번 사용된 '사랑하다'란 뜻의 동사 '아가파오'(agapao;  have loved) '사랑'이란 뜻으로 한번 사용된 '아가페'(agape; love)가  모두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신적 사랑을 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사랑하다' 동사가 이미 결정적이며 불변함을 암시하는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였다는 도 이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이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뜻이다.

'내 사랑 안에'에 해당하는 '엔 테 아가페 테 에메'(en te agape te eme; in my love)에서 '내 사랑'은 실제 원문에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사랑' 해당하는 '테 에메'(te eme)와 '그 사랑'에 해당하는 '테 아가페'(te agape) 두 단어로 되어 있다.

 

이것은 소유의 뜻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희랍어에서 소유의 뜻을 강조할 때에는 인칭 대명사의 소유격을 쓰는 대신에 '테 에메'(te eme)와 같은 소유 대명사 여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소유하시고 있는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 안에 머물러라고 명하신다.

여기서 '머물러라'로 번역된 '메이나테'(meinate; remain; continue) '메노'(meno)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서 '머물러 있으라' 혹은 '살라'는 뜻이다.

 

또한 '메노'(meno)가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아마드'(amad) '쿰'(qum) 등의 역어로 주로 나오는데, 이것은 어떤 것의 존재 뿐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계속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뜻도 지닌다.  

 

특히 '메노'(meno)가 하느님께 사용될 때에는 '지속하다', '불변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뜻을 지닌 '메노'(meno)와 더불어 신적(神的)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agape)가 쓰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선, 예수님의 사랑이 지닌 특성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이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먼저 베푸는 사랑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변함이 없고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므로, 누구든지 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이사55,1; 마태11,28; 로마2,11; 1코린1,26~31).

 

두번째는 우리가 얻은 구원이 지닌 영원한 효력이다. 

예수님과 일치한 자들,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이러한 특권과 축복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가 영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의 사랑의 관계도 또한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아가페'(agape)사랑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해나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것, 즉 이기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세상적인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부활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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