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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07 조회수1,667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은 단순히 사랑하라고만 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하되 조건이 있습니다. 서로라는 조건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한쪽은 예수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다른 한쪽은 그런 노력을 하지 못할 땐, 예수님 말씀처럼 노력을 하려는 당사자가 힘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말씀대로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려고 한다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 사랑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일 겁니다.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선 희생과 고통도 따릅니다. 희생과 고통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자기 품으로 말입니다. 이 과정이 목숨을 내놓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느 교부가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내놓는다는 이 의미를 해석한 게 있었습니다. 한번 제가 언제 언급한 글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기억이 나지 않아 조금 아쉽습니다.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목숨을 실제 내놓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그 교부의 말씀이 인상 깊었던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고 하는 애가 있었습니다. 실제는 입양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지만 사실 저한테는 딸과 마찬가지입니다. 초등 6학년 때부터 지도를 해서 수능 후 대학교 때에도 토익 시험을 위해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근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인연을 맺은 학생입니다. 지금은 이제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 학생은 여자만이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 고통이 찾아옵니다. 다른 애들보다는 유독 이 고통이 심한 아이입니다. 어떤 경우는 입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그 고통 때문에 힘들어 할 땐 참으로 보는 제 마음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떨 경우는 제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대신 아파줬으면 하는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제 막내 이모한테도 자문을 구하고 심지어는 그 고통을 완화해주는 차도 구해 그 애를 위해 준비를 해서 준 적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곳에서는 밝히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그 애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옛날에 한 번 카톡으로 이 애한테 이런 내용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너 혹시 심장이 안 좋아서 쌤 심장이 필요하면 너한테만은 내 심장을 줄 수가 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모르겠어요.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다른 애는 몰라도 그 애라면 저는 할 것 같습니다. 저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애랑 지내온 세월 동안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애를 통해서 사람에게 미운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숨은 이 아이에게 제가 품었던 그런 마음을 초월하는 희생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아이한테는 그나마 그때까지 그 아이한테 가졌던 애정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런 이해관계도 초월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그런 사랑을 원하실 것입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할 수 있는 희생은 누구나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예전에 오늘 복음을 접하게 되면 항상 이 애를 생각하며 한 묵상이 있습니다. 왜 제가 이 아이한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이 아이가 저한테 준 게 있습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이 아이랑 많이 다투고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제가 티칭하는 교수법은 자기가 생각했을 때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이 학생 엄마를 통해 들었을 땐 그래도 이런 걸 인정해주는 그 애 마음이 저한테는 고마웠던 것입니다. 꼭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어렸어도 마치 제 와이프라도 되는 것처럼 잔소리를 하면서 뭔가 말로 챙겨주는 모습을 볼 땐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니 제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스러워하겠습니까?

 

이 아이를 생각하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게 되면 일방적인 사랑으로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제가 이 아이를 딸처럼, 이 아이는 선생으로 관심을 줄 때만 이런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이래서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벗을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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