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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화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0 조회수1,654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 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22

바오로는 2코린 11.25에서 자신이 세 번 매질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1테살2,2에서는 필립비에서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을 자기 편지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24

행정관들이 명령한 안전장치는 베드로의 수감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12.4). 바오로 일행은 깊숙한 감방에 갇혔고 그들의 발에는 차꼬가 단단히 채워졌다.

 

25

극적 사건들은 흔히 자정과 여명 사이에 일어난다. 루카는 예수를 본받아 제자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기도한다고 증언한다.

 

26

지진은 그리스 종교 안에서 신현의 한 표지다. 성서적 전승애도 지진은 신현에 동반된다. 바오로 일행과 관련된 하느님의 중재는 베드로의 탈출에서보다 덜 직접적이고 덜 개인적이다.

 

27

그리스 소설과 위경 문헌에서 자살은 치욕과 불명예와 상실 앞에서 인간이 취하는 극도의 절망적 표현이다.

 

28

감방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간수는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죄수들이 도망친 것으로 착각했다. 그가 자신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바오로가 큰 소리로 죄수들이 탈출하지 않았음을 알린다.

 

29

때는 한밤중이기 때문에 간수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등불을 달라고 청한다. 그가 눈으로 직접 바오로 일행이 탈출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다음 벌벌 떨면서 그들을 신의 사자들로 믿고 엎드려 예를 갖춘다.

 

30

이사 49.6의 인용과 더불어 13.47에서 언급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성취될 만인을 위한 구원이라는 주제가 16.17에 이어 다시 이곳에 등장한다.

 

31

비슷한 정식이 5.14;9.42;11.17에도 나온다. 구원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서는 14.9;15.11 참조. “당신의 집안은 고르넬리오의 이야기와 리디아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32

바오로가 간수와 그의 집안사람들에게 전해준 주님의 말씀은 세례를 받기 전에 필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34

루카는 간수의 집안이 주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방문에 대한 기쁜 반응을 표현하기 위해 흥겨워하다라는 동사가 사용된다.

 

 

 

복음<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5

예수의 고별이 제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는 뜻으로 그들의 상황과 몰이해를 시사한다. “이제란 예수가 떠남으로써 발생할 전혀 새로운 상황을 뜻한다.

 

6

예수의 이별 예고가 제자들을 슬프게 만들었으나 그 슬픔은 자기들만 세상에 남아 적대하는 세상과 맞부딪쳐야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문맥상 바로 그런 슬픔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 이 고별담화의 핵심 의도다. 그리고 슬픔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결정적 계기는 예수의 부활체험이며, 부활한 예수에게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도 선사받게 된다.

 

7

진실로또는 진실을 말한다보다 깊은 표현으로서 예수의 말이 지닌 계시성을 시사한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떠나감으로서 제자들에게 이루어질 상황과 그 의미를 제자들이 잘못 이해하는 데 대해 말한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떠나감으로써 협조자가 올 수 있고 또한 제자들에게 이롭다는 것이다. 특히 이롭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입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제자들은 협조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면서 슬픔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8

협조자가 오면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들추어내어 바로잡는다는 뜻으로서 세상에 대한 승리가 시사된다. 이 일은 예수가 함께 그 일을 계속한다.

 

9

협조자가 와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임을 밝혀준다는 뜻이다. 문법상 믿지 않기 때문에 죄에 대해 책망한다는 뜻도 가능하다. 이런 의미로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된다. 하지만 문맥상 적절하지 못하다. “협조자의 이 일은 신앙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믿음은 믿지 않는 세상이 부당하게 믿음을 거절하는 데 대한 향수적 증언이다. “믿지 않는다의 현재 시제에도 이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이 나타나 있다.

 

10

더 이상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 적절하지 못하다. 이유보다는 사실을 밝혀 올바르게 깨우쳐 준다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고 제자들이 예수를 더는 보지 못하는 것이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임을 협조자가 밝혀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자들이 더는 볼 수 없는 예수가 아버지와 함께 머묾으로써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의롭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하느님이 예수를 의롭게 하셨다는 바로 그 사실로 믿음의 정당함이나 의로움도 드러난다. “협조자는 바로 이런 의로움을 밝혀준다. “협조자의 이런 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세상의 부당함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의로움은 세상에 대한 협조자의 심판적 특성도 내포한다.

 

11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번역도 10절 주석에서 언급했듯이 문맥상 적절하지 못하다. 믿지 않는 세상이 하느님 앞에서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두목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확실하다는 뜻이다. 심판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옴으로써 예수가 땅에서 들어올려지고 이 세상의 두목이 쫓겨남으로써 완전히 이루어졌다. 이제 협조자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그 사실을 밝혀주게 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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