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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1 조회수2,270 추천수10 반대(0)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사일런스(Silence)'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784년에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는 100여 년간 박해를 받았습니다. 1549년에 시작된 일본 천주교회는 300년간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박해도 길고 심했지만 일본의 박해는 더 길었고, 혹독했습니다. 300년 박해를 받는 가운데 사제도 없어졌고, 교회도 없어졌고, 조직도 없어졌습니다. 일본의 박해 중에 후미에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년 한 번 예수님의 그림이나 그 형상을 내놓고 그것을 밟으면 살려주고, 그것을 밟지 않으면 기독교인이라고 인정해서 처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제도로 인해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처형방법이 기독교가 해금이 될 때까지 약 300년간이나 지속적으로 행해졌습니다. 이런 박해 중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신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리도 모르고, 신앙생활도 모르지만 뜻도 모르는 라틴어 기도문을 외우는 신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411일자 기사에 팬데믹과 한국천주교회 통계에 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세자 수는 전년 대비 62.6% 감소했습니다. 견진성사 61.4%, 병사성사 43.5%, 첫 영성체 53.9%, 고해성사 54.8%가 감소했습니다. 주일미사 참여율은 9.8%였습니다. 100명 중에 90명은 주일미사 참례를 못하였습니다. 영성체 횟수도 57% 감소했습니다. 다만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한 주일미사 시청률은 전년도 대비 623%가 증가했고, 유튜브를 통한 미사참례도 555% 증가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미사 참례가 늘어났습니다. 통계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교회도 한국사회와 마찬가지로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65세 이상의 신자비율은 모두 늘었지만 25세 미만의 신자비율은 계속 줄어서 10% 미만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건강을 돌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이웃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후미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이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꽃 필 수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가난 때문에, 국가의 역량 때문에 코로나 백신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많다고 걱정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국가를 위한 백신 나눔을 호소하였고, 많은 지역교회에서 교황님의 뜻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검사와 백신 접종을 위해서 기꺼이 성당의 문을 여는 신부님을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귀찮고, 위험할 수 있지만 매달 코로나 검사를 위해서 성당을 개방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백신 접종을 위해서 신청을 받았습니다. 아침부터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까지 신청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뉴욕 대교구는(교구장 티모시 돌란 추기경)는 가난한 사람과 노숙자들을 위한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하였습니다. 지자체, 전문가, 후원자들이 협력하여 버려진 땅, 쓸모없는 땅을 이용하여 아파트를 건설하였습니다. 교구는 향후 활용도가 떨어지는 교구 소유 부지도 저소득 가정을 위한 아파트 부지로 활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뉴욕대교구는 협력단체, 신자, 비신자들과 합심해 아파트 마련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위틈에도 꽃이 피는 걸 봅니다. 팬데믹 상황이지만 길을 찾으면 신앙은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 주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몇몇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만나면, 우리는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환한 미소는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리면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가겠다고 신호를 보내는 사람에게 차선을 양보하면 그 사람은 지금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 위로의 성령, 굳셈의 성령, 지식의 성령, 지혜의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따뜻함과 온유함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전해 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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